경북 인명피해 마을 14곳, ‘재해위험지구’ 아니었다
시·군마저 위험 예측 못해
국비 ‘효용성’에 지원 밀려
이번 폭우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북 지역 마을 14곳 모두 시·군이 관리하는 ‘자연재해위험개선지구’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네 곳곳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시·군마저도 재해 위험성을 예측하지 못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일 경북도에 따르면 예천·봉화·영주·문경 지역 105곳에 자연재해위험지구가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이 지구는 수해 등 재해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에 지정한다. 기초자치단체인 시·군이 특정 지역을 선정하면 행정안전부와 경북도가 현장 실사를 통해 최종 지정한다.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면 국비 등을 지원받아 평균 100억원 규모의 사방댐과 제방 등 안전설비를 설치하게 된다.
하지만 폭우로 23명이 사망하고 4명이 실종된 예천·봉화·영주·문경의 마을 14곳 모두 여기에 포함되지 못했다. 동네 곳곳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시·군도 이번에 피해가 발생한 마을의 재해 위험성을 알지 못한 셈이다. 특히 문경과 영주는 지난 3월 일제조사를 통해 위험하다고 판단한 9곳을 추가로 재해위험지구로 지정했지만, 이때도 피해 마을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앞서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난 경북 지역 10곳 중에도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돼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아온 곳은 단 1곳(영주시 풍기읍 삼가리)뿐이었다.
피해 마을이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지 못했던 것은 경제적 이유가 크다. 재해위험지구로 지정되면 국비를 지원받게 되는데 이때 ‘비용 대비 편익’ 분석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것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100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했을 때 10명이 안전이라는 편익을 얻는 것보다 100명이 편익을 보는 곳이 지정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재정 상태가 열악한 지자체로서는 사업비를 확보하기 위해 사람이 많이 사는 곳을 지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사람이 많이 살지 않는 곳에는 지자체가 개별적으로 사업을 하고는 있지만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했다.
경북 지역 시·군 재정자립도는 대부분 15%를 넘지 못한다.
실제 이번 산사태로 5명이 목숨을 잃은 예천군 효자면 백석리 흰돌마을의 경우 14가구가 살고 있었다. 백석리 아래에 있는 은풍면 은산리에서는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됐다. 이곳도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 마을이다.
지구온난화 등으로 집중호우가 잦아진 기상 상황을 반영한 새로운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평소 비가 많이 오지 않아 수해 피해가 없었던 곳에서도 짧고 강하게 내리는 국지성 호우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고 있어서다. 산사태 피해 면적도 지난해 327.3㏊로 2021년 26.8㏊에 비해 12배 이상 늘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지난 17일 예천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기상이변에 따른 재해 관리 방식을 재검토할 때가 왔다”고 건의했다.
정영훈 경북대 건설방재공학과 교수는 “현재 산사태 위험도는 2015년에 만들어졌다”며 “당시에는 가뭄이 주요 기상 현상이었다면 2020년부터는 홍수가 주도하고 있다. 새로운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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