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강에 구명조끼 없이 장병 투입…재난구조마저 ‘안전 불감’
예천 내성천서 바닥 훑던 중 휩쓸린 3명 중 1명 못 나와
주민들 “깊어진 강 중심 수색 이해 안 돼”…유족 “살인”
경북 예천에서 집중호우와 산사태로 실종된 주민을 수색하던 해병대원 1명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해병대가 장병들에게 구명조끼도 입히지 않은 채 수색 작업에 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시민들을 구조하려고 나선 장병이 되레 사고를 당하는 비극이 또다시 벌어졌다.
19일 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5분쯤 경북 예천군 호명면 내성천 보문교 일대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진행 중이던 해병대원 1명이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다.
사고는 장병들이 하천에서 탐침봉을 이용해 실종자를 탐색하던 중 발생했다. 성인 남성 기준으로 무릎에서 허리 정도까지의 수심이었다고 한다. 간부들이 탐침봉을 들고 바닥을 짚으면서 앞서가고 병사들이 같은 경로를 따라 걷는 방식으로 작전이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뒤따르던 병사들이 발을 디딘 지반이 갑자기 내려앉아 대원 3명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2명은 자력으로 헤엄쳐 나왔고 1명은 물살에 빠르게 떠내려갔다. 실종된 병사는 해병대 1사단 포병대대 소속 일병이다.
장병들이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예천에는 전날 오후까지도 많은 비가 내려 일 강수량 42.5㎜를 기록했다. 지난 13일 밤 발령된 호우특보는 전날 밤 10시에야 해제됐다. 하천 지반이 약해졌을 가능성을 경시하고 최소한의 보호 장구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실종 주민을 수색하는 장병들의 모습을 지켜봤다는 예천 주민은 연합뉴스에 “내성천은 모래 강이라서 보통 강과는 다르다”며 “계곡처럼 갑자기 3m씩 아래로 빠지는데 그 아래가 펄이라서 강가에서나 도보 수색을 해야 했는데 왜 가운데까지 들어가는지 지켜보면서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실종 장병의 부친은 중대장에게 “구명조끼가 그렇게 비싼가요, 왜 구명조끼를, 물살이 얼마나 센데, 이거 살인 아닌가요. 살인”이라며 오열했다.
해병대 내부 규정상 수상에서 움직이는 함정이나 고무보트 등을 운용하는 인력은 구명조끼를 착용하게 돼 있지만 강이나 하천변에서 탐침봉으로 수색하는 인원들에 대한 별도 의무 규정은 없다고 해병대 측은 주장했다. 이번 작전 과정에 명확하게 들어맞는 명시적인 규정은 존재하지 않고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유동적으로 적용하도록 돼 있다는 게 해병대 측 주장이다. 해당 부대는 전날에도 같은 지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 수해 주민의 시신을 수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은 전날보다 날씨가 좋고 유속이 느려 보여서 현장 지휘관이 구명조끼에 대한 필요성을 간과했을 가능성이 있다.
해병대는 자체 수사단과 안전단을 현장에 파견해 안전 대책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사고 경위를 파악해 안전조치를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구명조끼 착용을 지시하지 않은 현장 지휘관 개인의 탓으로만 돌리는 꼬리자르기식 결론을 내린다면 사태 재발을 막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적어도 수해 실종자 수색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이라면 헬멧과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 착용은 의무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해병대 관계자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전우 해병이 실종된 것에 대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실종자 수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사고의 원인을 현장에서 신속하게 점검해 안전조치를 시행한 뒤 나머지 수해 복구 지원 작전이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하천 폭이 넓고 유속이 느린 하천 하류 부근 선몽대 일대를 중심으로 실종 장병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집중호우에 바닥이 파여 수심이 2~2.5m 수준까지 깊어진 구역도 있어 이곳에는 대원을 직접 투입하지 않고 그물망을 쳐뒀다. 수색 작업은 이날 야간에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6시 현재 예천에서 사망한 주민은 14명, 실종자는 해병대원을 제외하고 3명이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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