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동훈 장관의 불복 논리 이미 배척한 엘리엇 판정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 18일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중 하나인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한 장관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상업적 목적’이고,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등의 불법 행위는 ‘개인의 일탈’이라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PCA 중재판정부의 ‘엘리엇 판정문’을 보면 한동훈 장관이 불복의 근거로 제시한 논리에 이미 정반대의 판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된다. 한 장관이 왜 불복한다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렵다.
법무부가 한 장관 기자회견 이후 공개한 판정문을 보면 중재판정부는 “통상적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상업적 행위에 해당할 수 있음에 동의한다”면서도 “그러나 본건 합병에 대한 의결권 행사에서 독자적으로 상업적 목적으로 행위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문 전 장관 등의 행위도 “한국 법원은 문형표는 직권남용, 홍완선(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임무를 위배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문형표와 홍완선이 공무원 자격으로 행위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한 장관은 “잘못된 판정을 바로잡고, 국민 세금이 낭비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지만, 이길 확률은 매우 낮아 보인다. 새로운 논리나 증거 없이 중재판정부가 이미 기각한 내용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취소소송 방침을 밝힌 뒤에야 판정문을 공개한 것도 석연치 않다. 이 사건을 수사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이 엘리엇 쪽에 소송 근거와 논리를 제공한 당사자라는 비판을 의식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삼성물산·제일모직 불법 합병은 전형적인 정경유착 비리이다. 만약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가 상업적 목적이고, 문 장관의 일탈로 벌어진 일이라면 당시 검찰 수사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두 회사 합병에 찬성표를 던져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에 도움을 줬고, 국민연금에 압력을 가한 혐의로 문 장관은 유죄가 확정됐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는 이 회장으로부터 뇌물을 받고 당시 안종범 경제수석 등에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챙겨보라는 지시를 내린 사실이 밝혀졌다. 한 장관은 승산 없는 취소소송을 취하하고, 정경유착 책임자들을 상대로 구상권 청구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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