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게 아니라 뜨겁다...미국 피닉스 19일째 43도·이탈리아 시칠리아 44도
전 세계가 곳곳에서 기상 이변으로 기록적인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폭염 주의보가 잇따르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사상 최고 기온을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기후 모델 예측 시나리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지구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통제 불가능한’ 기온 이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봤다.
18일(현지 시각) BBC·뉴욕타임즈·월스트리트저널 등에 따르면 미국, 유럽, 아시아의 각국 보건 당국은 폭염 경보를 발령했다.
미국 남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는 낮 최고 기온이 19일 연속 섭씨 43도를 넘어섰다. 역대 최장기간이다. 피닉스에서는 하루 중 최저 기온이 32도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 날이 8일 연속 이어져 최장기간 열대야 기록을 세웠다. 미 국립기상청(NWS)은 피닉스에서 46도 이상의 기온이 최소 다음주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텍사스 엘파소에서도 33일 연속 기온이 38도를 넘어섰다. 미 남부지역의 극심한 폭염으로 9000만명 이상에게 폭염주의보가 발령됐다. 미국 뉴욕, 미시간과 버몬트 등에서도 낮 최고 기온을 경신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미 국립해양대기관리국(NOAA)은 올해 지금까지 미국에서 1만2000건 이상의 기록적인 최고 기온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곳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미국 캘리포니아의 데스밸리는 지난 16일 최고기온이 53.3도에 달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구상 대 최고 기온은 1913년 7월 데스밸리에 있는 퍼니스 크리크에서 기록된 56.7도다.
이러한 무더위는 지난달 중하순부터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유지하며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열돔’(heat dome) 현상으로 인한 탓이다. 예년 같으면 더위가 며칠간 기승을 부리다가도 몬순(계절풍)이 불어 비바람을 몰고 오면서 열기를 일부 식혀줬는데 올해는 그런 패턴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마이클 크리민스 애리조나대학교 환경과학 교수는 “몬순 일정이 해마다 달라서 지금 상황이 기후 변화와 관련 있는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올여름 몬순이 늦어지면서 일일 최고 기온이 더 높아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유럽도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유럽연합(EU) 비상대응 조정센터는 이날 이탈리아, 스페인 북동부 등에 폭염 적색 경보를 발령했다. 특히 이탈리아는 주요 관광지인 로마·피렌체를 포함한 모든 도시에 적색 경보가 내렸다. 시칠리아와 사르데냐의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 기온이 43∼44도로 관측됐고, 피렌체와 볼로냐에서는 최고 37∼38도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과 사르데냐섬이 최고 48도까지 치솟을 거란 경고도 나왔다.
유럽은 이번 주 최고기온이 역대 최고치에 근접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유럽 기상청에 따르면 지금까지 유럽 최고 기온은 2021년 시칠리아섬이 기록한 48.8도다. 유럽에선 지난해 6만1000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스와 스페인에선 폭염이 산불로 이어져 인근 주민들이 긴급 대피하기도 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15일 카나리아 제도 라팔마에서 비롯된 산불이 계속돼 4600헥타르와 건물 20여채를 불태웠다. 그리스 수도 아테네 인근에서 발생한 산불로, 18일 여름방학 캠핑 중이던 어린이 1200명이 긴급 대피하는 일이 발생했다.
앞으로 폭염 강도는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존 네언 WMO 선임 폭염 자문관은 “유럽이 경험하고 있는 폭염은 계속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면서 “전 세계는 더 극심한 폭염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WMO에 따르면 북반구에서 발생하는 폭염 횟수가 1980년대 이후 6배로 급증했고 그 결과 매년 수십만 명이 온열 질환으로 사망하고 있다.
아시아도 폭염, 폭우가 나타나고 있다. 중국 신장 지역에서는 16일 최고 기온이 52.2도로 올라가면서 역대 중국 최고 기온을 경신했다.일본에서도 17일 아이치현 도요타시 기온이 39.1도를 기록했고 야마나시현 고슈시 기온도 38.8도까지 올라갔다. 도쿄 도심 최고기온 역시 35도를 넘어섰다. 이에 따라 폭염에 취약한 노약자 등을 위해 47개현 중 32곳에서 열사병 경보를 발령했다.
한국도 19일 큰 피해를 냈던 ‘장맛비’가 지나고, 전국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1도 이상으로 올랐다. 기온이 상승하면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해 폭우 위험도 커진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를 기해 서울·경기·인천(강화군, 옹진군 제외) 등 수도권에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다.
전문가들은 이달에도 기록적인 기온이 계속되면 역대 최고로 무더운 여름이 될 것이라고 봤다. 캐스캐이드 투폴스케 미국 몬태나주 주립대학 교수는 “올 여름이 가장 더운 여름 중 하나라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면서 “극한 기온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들도 속출할 것이다. 존 네언 세계기상기구 선임 폭염 자문관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폭염은 우리 몸이 지속적인 열로부터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에 치명적일 수 있다”면서 “이로 인해 심장 마비 및 사망 사례가 증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주로 화석 연료 연소로 인한 온실 가스 배출로 인해 폭염이 더 빈번하고 심각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기온이 1도씩 오를 때 대기의 수증기가 약 7% 증가하는데, 지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시기인 1880년보다 최소 1.1도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각 국의 온실 가스 배출량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한스 헨리 클루게 세계보건기구(WHO) 유럽 지역 국장은 “살인적인 폭염과 기타 극한 날씨라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면서 세계가 앞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이 되는 기후 위기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지역 및 글로벌 조치가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말했다.
페데리케 오토 영국 그랜섬 기후변화 연구소 박사는 “여전히 화석연료 사용은 지속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기후 변화 대응에 100% 뒤쳐져 있다”면서 “이제는 통제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가 화석 연료를 중단하고 녹색 에너지로 전환한 뒤에야 새로운 기후가 어떠한 모습인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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