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실종인민공화국’
2018년 9월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의 멍훙웨이 총재가 갑자기 사라졌다. 최초의 중국인 인터폴 총재로 모국에 출장 갔다가 연락이 끊겼다. 열흘쯤 뒤 중국 국가감찰위가 그를 억류 중인 것이 알려졌다. 결국 뇌물 수수 등의 혐의로 유죄를 받고 수감됐다. 인터폴에서 일하면서 공산당 눈 밖에 났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멍 총재 아내는 3년 후 인터뷰에서 “(권력에 의해 갑자기 실종되는)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중국의 많은 가정이 나와 비슷한 운명에 직면해 있다”고 했다.
▶실제 중국 정부에 의한 ‘강제 실종’ 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해만 해도 투자은행 차이나 르네상스의 바오판 회장이 지난 2월 자취를 감추었다. 얼마 후 중국 당국의 조사를 받는 것이 확인됐다. 중국의 해외 비밀경찰서 운영을 폭로한 세이프가드 디펜더스는 이런 일이 일상화됐다는 보고서를 냈다. 매년 1만명 이상이 ‘행방불명’ 상태가 된다고 추정한다. 인권운동가 마이클 캐스터는 2017년 ‘실종인민공화국’이라는 책을 펴내 고발했다. ‘강제 실종’이 시진핑 시대의 통치 스타일이 됐다고 비판했다.
▶중국에서 실종되는 이들은 직위, 직종 불문이다. 중국 공산당에 미운털이 박히면 관료, 기업인, 연예인, 변호사 등 누구도 예외 없다. 2021년 테니스 스타 펑솨이가 장가오리 전 부총리로부터 성폭행당했다고 했다가 2주일 넘게 사라졌다. 덩샤오핑의 외손녀 사위 우샤오후이 안방보험 회장도 2017년 갑자기 없어진 후 기소됐다. 반체제 인사들은 동시에 실종되곤 한다. 2015년 중국의 인권운동가 약 300명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이 중 한 명인 왕취안장 변호사는 3년 뒤에야 살아있는 것이 알려졌다.
▶강제실종을 통한 공포 정치에는 중국 공산당 중앙기율위·국가감찰위가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 등의 ‘5G 스탈리니즘’으로 감시하다가 ‘문제 인물’을 추려낸다고 한다. ‘돌연 실종→비밀 신문·고문→교화→공개 반성’의 4단계가 진행되는 동안 누구와도 연락할 수 없다. 그나마 이런 과정을 거쳐서 돌아오는 경우는 운이 좋은 것이라고 한다.
▶친강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한 달 가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달 들어 미국의 재무장관, 기후변화 특사가 방중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 한다. 기밀 유출설, 불륜설, 시진핑 모욕설이 나돈다. 정상 국가 어디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 패권을 다툰다는 중국과 공산당의 실체가 이렇다. 그 옆에 있는 우리로선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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