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마다 병리진단 디지털화 2억원 이상 들어…정부 초기 지원해야”

염현아 기자 2023. 7. 19.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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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병리 활성화 위한 정책간담회 개최
“환자 이동시간 줄여 비용·시간 감소…검사 효율도 증가”
“병원 자체 예산으로 도입 부담 커…정부 지원 필수적”
대한병리학회와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가 19일 서울 강남구 루닛 본사에서 정책간담회를 열고 국내 디지털 병리 활성화를 위한 개선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염현아 기자

“병원이 초기에 디지털병리 시스템을 도입하려면 2억원 이상이 듭니다. 서울성모병원은 지난해 디지털병리 서버를 증설하는 데만 연 3억원 이상을 썼습니다. 이제 디지털병리는 필수인 만큼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정찬권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병리과 교수는 19일 서울 강남구 루닛 사옥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만, 정부가 환자의 비용·시간을 아끼고 진단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미래 가치를 고려해주길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와 대한병리학회가 국내 디지털병리 활성화를 위해 개최했다.

암이 의심되는 환자는 조직을 채취해 특수 염색을 한 뒤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해 살펴보는 병리진단이 필수적이다. 이때 암세포가 발견되면 암 확진을 받게 된다. 병리진단은 암 조직을 얇게 잘라 만든 슬라이드 수천 장을 배열해야 하는데, 이는 모두 병리의사의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최근 인구 고령화로 암 환자가 늘면서 매년 병리진단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병리의사의 업무량도 상당하다.

이런 번거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디지털을 이용한 ‘디지털병리’가 주목받고 있다. 유리 슬라이드를 초고화질 이미지로 스캔해 저장한 뒤 이를 모니터로 확인하고 진단하는 방식이다. 영상 분석 소프트웨어로 환자 조직 데이터를 빠르고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고, 컴퓨터 서버나 클라우드 시스템에 저장된 스캔 이미지에 언제 어디서나 접근이 가능하다.

실제로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의 2021~2022년 연구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의 경우 디지털병리 도입 후 총 검사 평균 시간은 12시간, 판독 시간은 14시간 감소했다.

이경분 서울대병원 병리과 교수는 “2021년 기준 연간 10만명의 환자가 1·2차 병원에서 종양을 진단받은 뒤 자신의 병리 슬라이드를 들고 3차 기관으로 이동했다”며 “환자의 이동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게 디지털병리의 최대 장점”이라고 말했다.

팽경현 루닛 이사도 “디지털병리 시스템은 AI(인공지능), 머신러닝, 딥러닝 등과 결합한 데이터 세트”라며 “디지털병리 데이터가 기반이 되면 다양한 바이오마커(생체지표자) 알고리즘 개발이 가능해, 환자 맞춤 치료의 초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장점에도 의료기관들은 디지털병리를 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디지털 스캐너, 저장 서버, 관련 소프트웨어 등 시스템 도입에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에 협회와 학회에서는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정 교수는 “디지털병리를 도입하려면 장비 설치와 병리검사실은 물론 병원 간 전산시스템을 연동하고, 의료 데이터 활용을 위한 클라우드 구축도 필요하다”며 “국내에는 적절한 보상 체계가 없어 의료기관의 부담이 크고, 유지·보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디지털병리 데이터 저장·보관 비용도 상당한데, 서울성모병원이 지난해 디지털병리 서버를 증설하는 데 연 3억원 이상을 썼다”며 “병원이 자체 예산으로 구축하려면 부담이 큰 만큼, 정부 차원에서 새로운 예산을 투입하거나 의료 보험수가 체계를 개선하는 등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9년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디지털병리 진단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시스템이 아직 충분히 갖춰지지 않아 일부만 디지털병리로 전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형주 한국로슈진단 전무는 “디지털 병리 도입 문턱을 낮추기 위해 구독모델을 국내에 도입했다”며 “디지털 병리가 더 많이 보급되도록 국내 환경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로슈진단은 업계 최초로 일정 기간 동안 디지털병리 솔루션을 사용해 볼 수 있는 구독 서비스를 출시했다. 구독 서비스는 조직 염색과 스캐닝부터 알고리즘 분석까지, 병리 진단의 전 과정에 걸쳐 이뤄진다.

한혜승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은 “디지털 병리의 영향력이 나날이 커져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지만, 고가의 초기 비용과 수가 문제 등 해결할 과제들이 많다”며 “이번 간담회를 첫 걸음으로 환자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위한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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