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 ‘반대 위한 반대’… 노동시장 취약계층 보호 취지 상실 [2024년 최저임금 9860원]

권구성 2023. 7. 1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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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극한대립 ‘연례행사’
최임위의 대표성·다양성 한계 제기
근로자위 ‘노총’·공익위 ‘학계’ 차지
중소기업·비정규직 대변 목소리 부족
공익위원이 캐스팅보트 행사도 문제
“노사합의 통해 결정 현실적 불가능
정부 주도로 의견수렴 방식 효율적”

내년도 최저임금을 심의하는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는 그 어느 때보다 노사 간 합의를 이루겠다는 공익위원들 의지가 강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양보 없는 극한 대립으로 해마다 공익위원안이 채택되는 것에 대한 반발과 최저임금제 도입 취지를 고려해 올해는 아무리 시일이 걸리더라도 합의를 이루자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최저임금 심의가 역대 최장인 110일에 걸쳐 이어진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사의 적대적 관계 속에 양측이 대립각을 굽히지 못하면서 최종적으로는 또다시 근로자·사용자·공익위원들 표결을 통해 19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심의과정에서 ‘반대를 위한 반대’가 난무하는 등 노동시장의 취약계층 보호라는 최저임금제도의 취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표결 지켜보는 공익위원들 2024년도 최저임금이 9860원으로 결정된 19일 새벽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 회의실에서 박준식 위원장(가운데)을 포함한 공익위원들이 모니터에 게시된 표결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최임위에 따르면 노사가 제시한 내년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각각 1만2210원과 9620원이었다. 격차가 무려 2590원에 달했다. 노동계는 가파른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최저임금 대폭 인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적용이 무산된 만큼 최소 동결해야 한다고 맞섰다.
결과적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9620원)보다 240원(2.5%) 오른 9860원으로 결정되면서 경영계의 요구안에 더 가까워졌지만, 애초 경영계가 노동계가 받아들이기 힘든 액수를 제시했다는 지적이 많다. 양측 모두 극과 극의 대치를 이어가면서 협상의 기회가 줄어들고, 종국에는 표결을 통해 최소 한쪽이 완전한 패자가 되는 논의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단의 논리가 반복되는 배경 중 하나로 최임위 위원들의 대표성과 다양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다. 최저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시장 약자를 위해 작동하는 제도이지만, 실질적으로 최저임금 영향권에 속하는 비정규직, 비노조, 장애인 등을 대변하는 목소리는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근로자위원은 양대노총의 추천에 의해 채워지고, 공익위원 역시 최저임금과는 거리가 먼 학계 인사가 차지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나마 사용자위원의 경우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비롯해 중소기업중앙회, 소상공인연합회 등의 추천 인사가 참여하지만, 이들 역시 최저임금에 따라 소득이 크게 좌우되는 근로자를 대변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경제학)는 “최저임금이 올랐을 때 기업은 최저임금 만큼의 생산성 없는 근로자를 해고한다”며 “이런 환경에서 취약한 근로자들은 보통 노조에 가입돼 있지 않기 때문에 최저임금 논의에서 제목소리를 내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경제학) 역시 “노조가 강한 기업은 물가에 대한 보상을 어떤 식으로든 돌려받는다”며 “결국 취약한 것은 노조가 약하거나 부재한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라고 짚었다.
3각 구도를 갖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이 9명씩 총 27명으로 구성되면서, 노사가 대립하면 사실상 공익위원이 결정권을 갖는 점도 개선돼야 할 과제로 꼽힌다. 올해는 노사의 최종 요구안을 표결에 부치는 방식을 택했지만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익위원안이 최종 채택되는 등 공익위원들이 사실상 캐스팅보트 역할을 쥐고 있었다.

특히 올해는 정부의 노동개혁에 반발하는 노동계와 정부의 갈등이 최임위를 통해 표출되기도 했다. 근로자위원인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이 망루 농성을 벌이다 구속되자 이에 반발한 노동계가 회의장을 퇴장하는가 하면 공석을 채울 근로자위원 추천을 두고 노정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노사 대립과 공익위원들의 최종 결정을 놓고 노사 모두 회의적 반응을 보인다. 근로자위원 간사인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매년 반복되는 사용자위원의 동결, 업종별 차등적용 주장, 정부의 월권과 부당한 개입에 사라진 최임위의 자율성, 독립성, 공정성을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박희은 민주노총 부위원장 역시 “최임위의 자율성, 독립성, 공정성을 확립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겠다”면서 “하반기 최저임금 제도 개선에 나설 것”이라고 시사했다.

경영계에서도 노사 갈등으로 원만한 논의가 어려운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경총은 이날 “그간 소모적 논쟁과 극심한 노사갈등을 촉발해 온 현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 제도개선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제도개선도 필요하다”며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일자리를 유지하고 경쟁력을 갖춰나갈 수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최임위의 논의 방식을 넘어 구성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임위의 ‘2022 주요 국가별 최저임금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과, 독일, 영국은 한국처럼 별도 위원회가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반면 중국과 프랑스, 그리스는 정부가 결정하고 있다. 러시아와 브라질, 이스라엘의 경우 결정권을 의회가 갖고 있다.

석병훈 교수는 “우리나라처럼 노사가 합의를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저임금제 자체가 정부 정책인 만큼 정부 주도로 결정하되 노측과 사측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식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라고 제언했다.

권구성·이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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