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난중에도 쌈박질만 하는 `5류 국회`
尹외교·고속도로 의혹 놓고 격돌
여야, 수해 수습책마저도 정쟁화
"이지경에 나라 굴러가는게 용해"
이보다 나쁠순 없다. 국가 재난중에도 쌈박질로 날새는 우리 정치 얘기다. 여야는 집중 호우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로 슬픔에 잠긴 국민을 위로하고 재난 수습에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국익과 직결된 외교와 명품 쇼핑 논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을 둘러싼 당리당략적 진영싸움에 여전히 올인하고 있다. 6·25 전쟁중 싸우는 정치권을 향해 "하늘 아래 둘도 없는 국회"라는 70년 전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한탄이 지금 들리는 듯하다. 전문가들은 "정치가 이 지경인데 나라가 굴러가는 게 용하다"고 말한다. 국가의 최대 리스크가 된 '5류 정치'의 현주소다.
여야는 19일 "수해 복구에 적극 나서겠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말 뿐이다. 작년 폭우 피해 발생 후 여야가 예방책 마련을 위해 발의한 법안조차 처리하지 않은 터다. 현재 20여개의 '도심 침수와 하천 범람 방지법'이 국회에 계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큰 사건이 터절 때마다 법안이 쏟아지지만 그 때 뿐이다.
여야는 수해대책마저 정쟁화하고 있다. 여당은 긴급 예비비 지출을 통한 해결을 강조한 반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총선용으로 들고나온 수십조 규모의 추경 카드를 다시 꺼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추경은 국민적 동의가 필요한 사안이고 논란이 예상되는 만큼 오히려 시급한 수해 복구 지원이 뒷전으로 밀려날 수 있다"면서 예비비 지출을 통한 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재원의 신속한 집행을 위해서는 올해 확정된 기정예산을 이·전용해 집행하고 부족할 경우 올해 재난 대비용 목적예비비 2조8000억원을 투입할 수 있어 재정적으로 충분한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경북 안동에서 가진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전국에서 발생한 수해복구와 특히나 어려운 민생경제 회복을 위해 이제 다시 추경을 해야 한다"며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예비비로 가능한 것인지, 대책 마련에 얼마나 소요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관계도 따지지 않고 추경을 밀어붙이겠다는 것이다. 정략적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재난 상황에서도 여야의 정쟁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의 공세에서 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으로, 또 윤석열 대통령의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 순방과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명품 쇼핑 의혹으로 전선을 계속 넓히고 있다. 윤 정부를 겨냥해 총공세에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통해 국민을 설득하는 대신 김건희 호위무사를 자처하거나 과거 문재인 정부 때 김정숙 여사의 의전 비용 논란 등을 끄집어 내 맞불작전에 총력전이다.
전문가들은 이대로는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지적한다. 홍성걸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는 "수해에 피해를 입은 국민을 어떻게 하면 보듬고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는 데도 정치권은 서로 욕하면서 정작 필요한 수해관련 법안은 하나도 처리하지 않았다"면서 "한마디로 한심한 정치권"이라고 비판했다. 홍 교수는 "정치권은 애당초 국민의 안전에는 관심이 없고 반짝 법안 내고 자기 이름이 매스컴에서 떠드는 것에 관심을 갖는, 관심종자밖에 없는 것"이라며"옳은 정치인은 하나도 없다. 이 지경에 나라가 굴러 가는게 용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이 볼때는 여당이나 야당이나 서로 잘났다고 하니 얼마나 가소로운 일이고 인재가 없으면 정치를 하고 있느냐"면서 "국회의원들 전부 책임지고 사표를 내야 하지만 책임지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 나라가 잘 살면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민주당의 추경 주장에 대해서도 "그들이 예산이 남는지 모자라는지 어떻게 아느냐. 당장 예비비나 재난 대책비가 얼마가 남아있고, 피해 복구하고 재난대책 다시 세우는 데 얼마나 드는지 총액은 나오지도 않았다"며 "추경해준다고 하면 피해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됐던지 돈 준다고 하니 고마워하는 줄 알고 주장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외교도 진영화가 돼 있는 것처럼 수해 문제도 4대강 문제 등을 끼워넣어 과학이 아닌 진영으로 해석하고 있다"면서 "과학이 진실을 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해석의 수단이 돼 버렸고, 이런 상황이 여야 모습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야당의 추경 주장에 대해 "추경이 무조건이 아니라 왜 필요한지 따져봐야 한다. 수해 복구에 필요한 게 있을 것이고, 수해방지를 위해 뭘 해야하는지 따져봐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그것도 없이 추경부터 하자는 건 올바른 접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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