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기쁨이 내 것 돼야 작가의 글쓰기 확장됩니다”
<끝내주는 인생>(디플롯).
엠지(MZ) 세대의 인기 작가 이슬아가 최근 출간한 산문집으로 저자의 13번째 책이다. 사진작가 이훤과 공동작업했다.
2013년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가작을 받으며 작가 명함을 얻은 그는 5년 전에 자신의 글을 매일 한 편 전자우편으로 보내고 월 1만원을 받는 유료구독서비스 ‘일간 이슬아’로 세상의 큰 관심을 받았다. 그가 새로 놓은 이 길을 많은 작가가 따랐고 그중 여럿이 “네 아이디어 덕분에 청탁 없이도 원고료를 벌 수 있다”고 고마워했단다.
“꽤 수익이 되었던” ‘일간 이슬아’는 올해는 쉰다. 지난해 그가 처음 펴낸 장편소설 <가녀장의 시대>가 드라마 계약을 맺고 그가 각본 작업에도 참여하면서 시간을 내기 힘들어서란다. 할아버지가 통치하는 집안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성장한 뒤 가정을 통치하는 이야기인 이 소설은 대만과 일본에도 판권이 팔렸다. “가녀장을 영어로 옮기면 어떤 말인지 바로 떠오르지 않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바로 이해를 하더군요. 한자 아비 부가 여자 녀로만 바뀌었으니까요.”
실제 그는 5년 전 자신이 세운 헤엄출판사 정직원으로 ‘모부’(엄마 아빠)를 고용하고 있다. “아빠는 회계와 세무를, 엄마는 책을 서점에 보내거나 고객 관리를 하고 있죠. 엄마는 출판사 스태프 식사까지 챙겨 아빠보다 급여가 두 배이죠.” 그가 5년 전에 펴내 5만 권 이상이 팔린 <일간 이슬아 수필집>은 일본어로도 번역 출판되었다.
지난 18일 한겨레신문사에서 이 작가를 만났다.
그의 이전 많은 글처럼 이번 산문집에도 그가 살면서 만나는 많은 타인이 등장한다. ‘…어리석은 여자는 군부대로 강연을 간다’라는 글에서는 그가 난생처음 한 군부대 글쓰기 강의에서 자신에게 난감함과 그에 못지않은 깨우침을 안겨준 ‘용사 300명’이 등장하고 ‘젊은이와 어린이’에서는 늘 쩌렁쩌렁하고 엄격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꼬맹이 원생들을 챙기는 동네 태권도장 관장님이 저자의 애정 어린 관찰 대상이다. ‘그랜드도터’에서는 무당이었다는 증조할머니의 삶을 따라간 뒤,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온 느낌”이라면서 “무당이었던 조상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덜 고독해지는 기분”이라고 썼다.
그는 ‘그랜드도터’를 쓰려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엄마, 이모를 인터뷰했다”고 했다. “기억 안 하면 없어지니 열심히 물어봤죠. 이 글을 쓰면서 4대를 건너 올라가는 내 가족의 역사를 새 눈으로 바라보았죠.”
그는 언젠가 타인을 두고 자신에게 배움을 주는 존재라고 했다. “이번 책은 저를 만든 타인들 이야기이죠.” 이슬아에게 타인이란? “타인 없이는 한 문장도 못 쓰죠. 저의 자아도 사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되 튕겨 나온 것이라고 생각해요. 타인 없인 나도 없어요.” 이런 말도 했다. “제 글쓰기 선생님은 ‘남의 슬픔이 내 슬픔이 될 때 작가의 글쓰기가 확장된다’고 하셨어요. 저는 더해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작가의 글쓰기가 확장된다’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사람이 울고 웃을 때 같이 울고 웃는 게 작가의 일 같아요.”
‘이슬아 산문’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많다. 그도 동의했다. “컴퓨터에서 글을 쓰고는 컨트롤 에프(F) 키를 눌러 어떤 단어를 많이 썼는지 확인하고 너무 많이 쓴 단어는 줄이곤 해요. 대표적인 단어가 ‘너무’이죠. 너무를 습관적으로 많이 써 의식적으로 줄입니다. 사랑도 많이 써서 덜어냈는데도 그 정도입니다. 사랑이 숨길 수 없는 저의 정체성인 모양이죠. 저는 사랑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죠.” 최고란 단어도 눈에 띈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책 속에 쓰여진 ‘네가 최고’라는 말은 상대적으로 검증한 1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응원에 가까워요. 친구들과 저는 그런 지지를 주고 받아요.”
5년 전 월 1만원 받는 ‘일간 이슬아’로
유료구독 개척한 MZ세대 인기 작가
장편 ‘가녀장의 시대’는 드라마 계약
“이번 책, 나를 만든 타인들 이야기
‘오래전 시작된 나’ 무당 증조할머니
‘밥 맛있는’ 대안학교에 보낸 모부 등
4대 이어온 가족 역사 새 눈으로 봐”
이번 책에서 독자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고 싶었냐는 물음에는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다른 걸 떠나서 일단 재미로 승부를 보고 싶었어요. 책 말고도 볼거리가 너무 많은 세상이지만, 여전히 종이책이 아주 재밌다는 걸 설득하고 싶었고요. 이 책을 내고 가장 많이 들은 반응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었다’입니다. 저는 말로 웃기는 데는 큰 관심이 없지만 글로 웃기는 것은 항상 열심히 하고 있어요. 우환을 겪은 친구의 일도, 강연장에서 쩔쩔매는 나의 일도, 돌아가신 증조할머니의 생도 대충 보면 불행하지만 자꾸 들여다보면 분명 재미가 있거든요. 글로 쓰는 순간 그 사건에 거리를 두면서 유머를 발휘할 수 있게 되죠. 반면 마냥 재밌어보이는 요가원 이야기는 읽다보면 은근히 엄청 목이 메이기도 해요. 이렇듯 기쁨과 슬픔이 뒤엉켜있는 일들에 관심이 많아요.”
그의 글 속 타인들은 책에 어떤 반응일까? 특히 그의 글에는 작가의 모부가 자주 등장한다.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옮겨 적는 순간 가공이 되잖아요. 그래선지 엄마 아빠는 자기 이야기라고 별로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편집한 재미난 이야기라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도 제 글은 픽션(허구)이 섞일 수밖에 없다고 봐요. 같은 일을 겪더라도 제 버전의 이야기이니까요.”
고졸에 생산직 육체노동자였던 그의 모부는 두 자녀 모두 “입시 교육을 하지 않고 대신 밥이 맛있는” 생태형 대안학교에 보냈다. “자식들이 즐겁고 튼튼한 사람이 되기만을 바라셨어요.” 특별한 부모인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받았다. “학력에 대한 자격지심이 전혀 없으셨어요. 타인이든 자기 자신이든 학력으로 판단하지는 않기 때문이겠죠. 저한테도 대학 안 가도 된다고 늘 말씀하셨고요.” 모부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뭐냐고 하자 그는 “웃기다”라고 답했다. “사람을 웃겨요. 농담도 계속하고요. 기본적으로 웃긴 사람들이죠. 젊어요.”
그는 23살부터 올봄까지 8년 가까이 어린 학생들에게 글쓰기 지도를 해왔다. ‘일간 이슬아’와 출판사 운영으로 바쁜 시간에도 놓지 않았던 일이다. 그만의 ‘글쓰기 강의 필살기’가 있을까? “아이들의 좋은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면 먼저 저의 중요한 이야기를 바쳐야 합니다. 오늘의 글쓰기 주제가 수치심이라면 내 인생의 수치스러운 일을 먼저 굵고 재밌게 바쳐야죠. 아이들은 절대 맨입으로 (글을) 주지 않아요. 제가 작가이자 선생님이 될 수 있었던 데는 제 책이 쉬운 덕도 있는 것 같아요. 제 글 독자는 어린이부터 할머니까지죠. 수업 중에 아이들에게 제 글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그의 꿈은 노년이 되어서도 현역 작가로 사는 것이다. “글을 계속 쓰려면 부단히 듣고 읽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 상태가 좋을 때 책을 읽어요. 요즘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다시 읽고 있어요. 새로 나온 에세이 <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도 읽고 있는데 최현숙 작가님은 정말이지 끝내주는 것 같아요. 아빠들이 쓴 육아 에세이 <썬데이 파더스 클럽>도 재밌게 읽는 중이에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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