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년 전 묻은 '나의 보물'…인천 선학초 타임캡슐 개봉 대작전

김휘란 기자 2023. 7. 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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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후 3시 인천 선학초등학교 타임캡슐에서 나온 편지와 물건들. 〈사진=김휘란 기자〉
"너는 그때 뭐 묻었어?""야~ 너 완전 그대로다!""학교가 이렇게 작았나."
2023년 7월 19일 오후 2시.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인천 선학초등학교 운동장.

들뜬 얼굴을 한 어른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 20년 전인 2003년 7월 19일, 인천 선학초등학교 학생 1983명과 교사 70명은 이명수 전 교장의 지도하에 편지와 물건 등 총 2053점을 캡슐에 봉인했습니다.

오늘은 바로 그 '타임캡슐'은 여는 날입니다.

2003년 7월 19일 인천 선학초등학교 교정에 봉인됐던 타임캡슐. 〈사진=김휘란 기자〉

어른 돼 다시 찾은 초등학교…"추억 많이 떠올라요"



쌍둥이 자매인 김진아·김진영 씨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진아 씨는 "그때 꿈이 뮤지컬 배우여서 녹음을 한 테이프를 넣어놨다"고 회상했습니다. 진영 씨는 "미술 시간에 만든 석고팩을 넣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습니다. 자매는 "학교가 이렇게 작았는지 몰랐다"면서 "오랜만에 늘 가던 분식집에서 피자떡볶이를 먹고 왔다"고 웃어 보였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전상권 씨는 "편지를 넣어놨던 것 같다"고 떠올렸습니다. 행사 시작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학교를 구경하던 전 씨는 "기억들이 새록새록 난다"며 "친구들과 연락을 한 상태여서 곧 만날 수 있을 것 같다"며 설렘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어엿한 경찰이 된 황광수 씨는 "오늘이 마침 비번 날이라 형과 같이 오게 됐다"면서 "거의 15년 만에 학교에 와보는데 옛날 생각도 나고 (타임캡슐을) 정말로 열게 돼 신기하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딸과 함께 '타임캡슐 개봉식'을 찾은 임진욱 씨. 손에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에게 줄 선물들이 들려 있다. 〈사진=김휘란 기자〉

캡슐을 묻을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임진욱 씨는 아이를 품에 안고 행사장을 찾았습니다. 우표를 넣었던 임 씨는 오랜만에 만날 친구들을 위한 작은 선물들도 준비해 왔습니다. 임 씨는 "올해쯤 (캡슐을) 열지 않을까 싶어 기억을 하고 있었다"면서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20년 전 그날…타임캡슐에는 어떤 물건들이?



오후 3시 정각이 되자 이명수 전 교장선생님과 이명옥 현 교장선생님 등이 대표로 나서서 삽을 뜨기 시작했습니다. 운동장에 모인 어른들의 표정은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 동심이 가득한 모습이었습니다. 포크레인까지 동원되며 타임캡슐의 윤곽이 점차 지상으로 나오자 곳곳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20년 만에 지상으로 나오는 타임캡슐. 〈영상=김휘란 기자〉

하지만 아쉽게도 시간이 흐르면서 타임캡슐 안은 많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커다란 김치통의 뚜껑을 꼭 닫고 비닐을 꼼꼼히 싸맸지만 물이 들어차면서 대부분이 썩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오염된 물품들 사이에서 20년 전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보물들을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저금통, 임명장, 일기장, 야구공 등 다양한 물건들이 등장했습니다.

타임캡슐에서 나온 일기장, 만화책, 임명장. 〈사진=김휘란 기자〉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권영유 씨는 오랜 탐색 끝에 정성스레 포장해 넣어놨던 라디오 테이프를 찾았습니다. 테이프를 발견한 권 씨는 "정말 신기하고 기억을 못할 줄 알았는데 포장지를 보니 기억이 난다"며 "그때 당시에 (라디오 테이프는 제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고 감격스러운 소감을 전했습니다.

분홍색 포장지에 싸인 20년 전 그날의 라디오 테이프. 〈사진=김휘란 기자〉

"30살 내 모습은 어떨까?" …'희망' 꾹꾹 눌러담은 편지도



물건 대신 '미래의 나'에게 적은 편지들 역시 대부분 물에 젖은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비교적 온전하게 보관돼 눈길을 끌었습니다.

20년 전 '미래의 나'에게 쓴 편지들. 〈사진=김휘란 기자〉
"나는 타임캡슐에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넣었지. 그때의 내가 그것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그때 생각이 난다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이다.""미래에는 내 사투리가 고쳐졌을까? 그땐 내가 돈을 많이 벌었는가? 나의 나쁜 성격이 고쳐졌어? 고쳐졌으면 좋겠다…'미래의 나'는 다 알고 있겠지."

"20년간 간직한 옛 꿈…새로운 출발 계기 되길"


행사 중간 밝게 웃어 보이는 이명수 전 인천 선학초등학교 교장. 〈사진=김휘란 기자〉

이명수 전 선학초등학교 교장은 "(개봉식을 준비하면서) 3개월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학생들이 올지 안 올지 몰라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행사를 열 수 있어 정말 즐겁다"며 "20년 동안 간직했던 옛꿈을 마주하고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장"이라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명옥 현 선학초등학교 교장도 "타임캡슐에는 20년 전 학생들의 소망과 목표가 담겨 있을 것"이라며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음을 자부하고, 새로운 소망과 목표를 품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다짐의 시간이 됐으면 한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20년의 기다림'. 〈사진=김휘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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