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스퍼드 졸업" "공중곡예 가능"... 런던 월세난에 '자소서' 쓰는 세입자들

김현종 2023. 7. 19.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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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옥스퍼드대 졸업. 일 욕심 많음." "스페인·중국어 능통. 공중 곡예도 가능."

영국 수도 런던에서 월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보낸 '자기소개서' 문구들이다.

WSJ는 현지 부동산 업자를 인용해 "영국 주택 매매 시장에서는 구매자들이 탐나는 부동산을 얻기 위해 판매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오랫동안 자기소개서를 활용해 왔다"며 "그런데 이젠 임대 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 집주인의 세입자 평가에 쓰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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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금리 상승에 월셋집 매물 급감
'100 대 1' 경쟁률 뚫어야 월세 계약
영국 런던 북부에 위치한 주택가 풍경. 최근 런던은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급등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영국 옥스퍼드대 졸업. 일 욕심 많음.” “스페인·중국어 능통. 공중 곡예도 가능.”

영국 수도 런던에서 월셋집을 구하는 세입자들이 집주인들에게 보낸 ‘자기소개서’ 문구들이다. 런던 부동산 업자들은 "세입자 간 경쟁이 ‘오디션’을 방불케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영국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이 맞물리면서 월셋집 매물의 씨가 말랐기 때문이다. 월세 계약을 위해선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할 정도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런던 지역 월세 세입자들이 집주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천태만상 실태를 소개했다. 월셋집 부족 사태가 세입자로 하여금 집주인 앞에서 ‘이미지 경쟁’을 하도록 내몰고 있다는 얘기다.


집주인 호감 사려 '이미지 경쟁'

WSJ에 따르면, 호주 시드니 출신 카먼 렁(26)은 최근 이력서에 준하는 전자문서 파일을 런던 부동산 중개업자들에게 배포했다. 경력과 취미(폴댄스와 비슷한 운동인 ‘공중 후프’)는 물론, 스페인어와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어학 능력’까지 기재했다. 신문은 “렁은 몇 번의 시도 끝에야 예산보다도 25%나 비싼 월셋집을 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임차인 권익 단체 활동가인 톰 달링도 이력서를 썼다. 달링은 “너무 엘리트주의자처럼 비치지 않을지 고민했다”면서도 자신이 옥스퍼드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WSJ에 말했다. 이어 “안정적인 연애를 하고 있고 깔끔하며 일 욕심이 많다고도 썼다”고도 했다. 집주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서였다. 다만 그는 “부동산 중개업체는 ‘임대인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이는 차별일 뿐”이라며 불편함을 내비쳤다.

이뿐이 아니다. “5㎞를 15분 만에 달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거나, 월세 주택과 이웃 동네가 얼마나 멋진 곳인지 칭찬하는 편지를 집주인에게 부친 세입자들도 있다고 한다. WSJ는 현지 부동산 업자를 인용해 “영국 주택 매매 시장에서는 구매자들이 탐나는 부동산을 얻기 위해 판매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오랫동안 자기소개서를 활용해 왔다”며 “그런데 이젠 임대 시장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 집주인의 세입자 평가에 쓰인다”고 짚었다.


월세 매물, '매매 시장'으로 이동

제레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이 지난달 26일 영국 런던 의사당에서 주택 시장에 대한 금리 인상 여파를 설명하고 있다. 런던=AFP 연합뉴스

런던만이 아니라 영국 전체에서도 임대주택 매물은 급감하는 추세다. 지난달 24만1,000채로 14년 만에 가장 적었다고 영국 마케팅 컨설팅회사 ‘트웬티씨아이’는 밝혔다. BBC방송은 “영국 임대주택이 1년 반 만에 30%나 줄어들었다”고 전했다. 집을 못 판 임대인은 수개월째 월세를 3~5%씩 올리고 있다.

이는 소비자물가와 금리가 동시에 폭등한 결과로 분석된다. 임대인들이 이자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해 대거 매매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3.1%를 넘지 않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11.1%까지 치솟았다. 이달도 7.9%를 기록했다. 6년간 1%를 넘긴 적이 없었던 금리도 물가 안정을 위해 지난달 5%까지 인상됐다. 지난 5월 유럽연합(EU)의 물가 상승률과 금리가 각각 5.5%, 4%에 그쳤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에 따른 후폭풍이라고 볼 여지가 있는 셈이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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