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부동산 시장, 금융정책도 전환을

한겨레 2023. 7. 19. 18:2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지난달 18일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연합뉴스

[세상읽기] 박복영 | 경희대 교수·전 청와대 경제보좌관

부동산 정책 실패 조짐이 다시 나타나고 있다.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버블이 꺼지나 싶더니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올해 들어 다시 급등세다. 실거래 가격이 5개월 연속 상승해 강남권은 올해 들어 11% 올랐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상승률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자금이 다시 부동산 시장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달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무려 7조원 증가했는데 3년4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라고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젊은이들이 다시 탄식을 쏟아내고 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배신당했다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때만큼 과열은 아니지만, 정책당국의 대응은 다시 실패할 징후들을 나타낸다.

시장 상황은 몇달 새 정반대로 바뀌었는데 정부의 금융완화 정책은 그대로다. 필자가 늘 주장하듯 부동산 정책의 핵심은 금융에 있으며, 성패를 가름하는 것은 타이밍이다. 실기하면 웬만한 정책으로는 잡을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뒤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자, 정책 목표를 부동산 시장 연착륙에 두었다. 부동산 보유세 인하,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규제 완화를 잇달아 발표했다. 금리인상도 최대한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했다. 가격 하락이 시스템 리스크, 즉 금융시장 전체 충격으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부동산 가격은 그만큼 하락하지도 않았고,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한 금융기관들은 그 충격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전문가는 물론 정책당국 스스로도 시스템 리스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그런데도 대출규제 완화는 계속됐다. 단 하나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도 부실해지도록 놔둘 수 없다는 듯이, 관련 금융지원책을 내놓았다. 호수에 잔물결 하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이는 버블을 그냥 가지고 가겠다는, 그 버블에 일조한 건설사와 금융기관도 그대로 데리고 가겠다는 신호였다. 수출 경기는 극도로 부진하고, 정부는 긴축재정 기조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태세다. 여기에 부동산 시장까지 꺾이면 큰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시장이 이 신호를 놓칠 리 없다.

부동산 시장은 이미 뜨거워지고 있는데, 정부는 아직도 부동산 시장 연착륙을 얘기하고 있다. 지난달 발표된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은 여전히 유동성 공급 확대와 부동산 피에프 지원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은 이미 방향을 바꿔 올라가고 있는데, 정부는 더 끌어올리겠다고 하는 형국이다.

부동산 정책 대응이 늦은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정책 실패의 응집된 피해자 집단이 없다. 부동산 과열의 잠재적 피해자는 무주택자들인데 흩어진 이들이 목소릴 안 내니 조기에 이슈화하지 않는다. 시장이 한참 달아오른 뒤에야 문제가 불거진다. 서울과 지방의 다른 시장 상황도 초기 대응을 미루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정부의 타성이다. 관료는 어떤 정책 방향이 정해지면 다른 신호나 지시가 없이는 상황이 바뀌어도 신속한 정책 전환에 나서지 않는다. 특히 그 방향이 윗선 지시로 정해졌다면 더 그렇다. 지금 같은 금융완화 기조가 굳어진 데는 레고랜드 사태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피에프 부실화로 비슷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 싶을 것이다.

얼마 전부터 금융정책 메시지가 금융위원장이 아니라 그 하부 기관장인 금융감독원장 입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대통령 측근인 금감원장이 현재의 금융완화 기조를 이끄는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인지 변화된 경제 상황에 따라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나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부채 위험을 언급하며 경고를 보내는데 크게 들리지는 않는다.

커다란 버블이 있었는데 사소한 소란도 없이 넘어갈 수는 없다. 곪은 것은 터지게 하는 것이 정석이다. 지금 부동산 피에프 문제는 금융시스템에서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2011~12년 피에프 연체율은 10%대였지만 지금은 겨우 1%대다. 대마불사형 정책이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가져왔는데, 버블기에 부주의하게 투자한 피에프들마저 모두 보호한다면 도덕적 해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금융완화가 당장 건설사와 피에프 시행사들을 살릴 수는 있겠지만, 살아나는 것 뒤에 소리 없이 죽어가는 것을 보아야 한다. 무주택 청년의 미래는 질식되고, 불로소득 증가로 경제는 더 정의롭지 못하게 되며 근로의욕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