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문제에 쾌도난마는 없다…공교육 강화만이 답이다
[왜냐면] 박경미 | 민주당 교육특위 위원장·전 청와대 대변인
6월과 9월 모의평가는 연습게임이다. 수험생은 모의평가를 통해 수능 출제 경향을 파악하고, 출제자는 학생들의 수준을 가늠하는, 쌍방에게 연습게임인 것이다. 학부모는 도시락 모의고사를 치른다. 수능 날 싸줄 도시락 반찬을 모의평가 때 점검한다. 이처럼 예민한 수능을 수개월 앞두고 터진 대통령 발언에 교육현장은 한 달 넘게 소용돌이치고 있다.
교육부는 사교육 유발의 주범으로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제)을 지목했다. 하지만 수없이 지적됐듯 킬러 문항을 제거한다고 사교육은 줄어들지 않는다. 사교육은 일종의 그림자로 킬러 문항이 없어지면 이를 대체할 준 킬러 문항의 실체에 대한 그림자가 생긴다. 킬러 문항이 사라지면 수능 변별력은 낮아지게 되고 대학별 고사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수능 사교육은 시장이 크기 때문에 강사에 대한 평가가 객관화돼 있고 교육비도 비교적 투명하게 책정되는 데 반해, 대학별 논술과 구술은 시장이 작아 검증이 어렵고 교육비도 더 비싸다. 사교육은 학생과 학부모의 불안감을 먹고 크는 만큼 수능 경향이 바뀌면 이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진다. 그뿐만 아니라 올해 수능이 만만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반수생이 학원에 몰리고 있고, 대입 사교육은 잡는다면서 고입 사교육을 부추길 자사고·외고·국제고 존치 결정으로 이래저래 사교육은 증폭할 조짐을 보인다.
우리 사회는 사교육 창궐의 심각한 병으로 고열이 끓고 있다. 첫째 대응방안은 해열제를 주는 대증요법으로, 킬러 문항 배제가 이에 해당할 텐데 전술한 대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는 병을 제대로 치료를 하는 것으로 공교육 강화가 답이다. 셋째는 병에 걸리지 않도록 기초 체력을 기르는 것으로, 대학 서열에 따른 차별을 줄이고 학력주의를 타파해 사교육 수요를 줄이는 것이다. 이건 사회 구조적 변화를 수반하는 만큼 장기간에 걸쳐 추진해가야 한다.
결국 사교육 문제의 해법은 공교육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공교육 교사는 대부분 치열한 교원임용시험을 뚫고 임용된 재원들이다. 공교육 교사의 역량은 사교육에 결코 뒤지지 않지만, 각종 행정 업무로 수업 준비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최근 개통한 4세대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는 교사의 행정 처리를 지원하기는커녕 빈번한 오류로 전혀 나이스(nice)하지 않은 ‘4세 나이스’라는 비판을 받았다. 교사의 행정 업무를 간소화하고 전담 인력을 확충해서 교사가 수업을 질을 높이는 데 전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공교육의 경쟁력을 높여 사교육 수요를 흡수하는 근원적 대책 가운데 하나가 교사 연수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설 수 없다는 자명한 명제에 비춰볼 때, 교사의 수업 전문성 신장을 위한 연수 기회를 더 풍부하게 제공해야 한다.
교육부는 출제기법을 고도화하면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데, 지난 30년간 베테랑 출제자들이 만들지 못한 신통방통한 수능 문항이 나올지 의문이다. 문항의 난이도와 변별력은 비례하는 관계이므로 낮은 난이도와 높은 변별력은 병립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교육부가 호언을 했으니 무엇인가는 만들어내리라 기대한다. 그렇다면 9월 모의평가까지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도록 하루빨리 예시 문항을 제공하는 게 섣부른 수능 발언으로 혼란에 빠진 수험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차제에 킬러 문항이라는 용어도 재고해야 한다. 킬러 문항은 학원이 불안 마케팅을 위해 극단적 단어를 결합해 선동적으로 조어한 것인데, 이제는 ‘킬러 규제’ 등 다른 분야까지 확장하고 있다. 인간의 사고를 반영해 언어가 만들어지고, 사용하는 언어에 의해 사고가 형성되는 것을 생각하면 대통령이 앞장서 ‘킬러’라는 표현을 확산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교육부가 발표한 사교육 경감 방안은 솔직히 챗지피티(GPT)가 내놓은 대책보다 부실하다. 교육 문제에서 꼬인 매듭을 잘라버리는 쾌도난마식 해결은 가능하지 않다. 얽히고설킨 매듭을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풀어가는 지난한 노력, 공론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가는 숙의 과정이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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