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세기

한겨레 2023. 7. 19.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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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극우 정치 세력들이 반이주민 정책을 내걸고 반목을 조장하며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상황을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한 기사(''반이주민' 기세 업은 유럽 극우, EU 난민정책도 흔든다'·<한겨레> 7월11일치 2면)를 보니 그곳에서 번져가는 이 혐오의 불길이 진정 불길하게 느껴진다.

프랑스 경찰의 알제리계 소년 사살 이후의 사태가 반이주민 선동에 이용되면서 외려 극우의 득세를 돕는 상황도 그렇지만, 네덜란드의 연정 붕괴가 보여주듯이 그 사태를 계기로 이주민·난민 정책이 유럽 각국 정치를 좌우하는 핵심 의제가 된 것 자체가 지구의 앞날을 예고하는 조짐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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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이민자 차단을 명목으로 폐쇄된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 다리를 다시 개방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이 지난 7일(현지시각) 프랑스 남서부 앙다유에서 “벽이 아니라 다리를 놓자”고 쓴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앙다유/AFP 연합뉴스

[크리틱] 정영목 | 번역가·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유럽에서 극우 정치 세력들이 반이주민 정책을 내걸고 반목을 조장하며 영향력을 확대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상황을 한눈에 들어오게 정리한 기사(‘‘반이주민’ 기세 업은 유럽 극우, EU 난민정책도 흔든다’·<한겨레> 7월11일치 2면)를 보니 그곳에서 번져가는 이 혐오의 불길이 진정 불길하게 느껴진다. 프랑스 경찰의 알제리계 소년 사살 이후의 사태가 반이주민 선동에 이용되면서 외려 극우의 득세를 돕는 상황도 그렇지만, 네덜란드의 연정 붕괴가 보여주듯이 그 사태를 계기로 이주민·난민 정책이 유럽 각국 정치를 좌우하는 핵심 의제가 된 것 자체가 지구의 앞날을 예고하는 조짐처럼 읽히기 때문이다.

근대에 반이주민 정서가 정치적으로 표현된 대표적인 예는 뜻밖에도 이민자의 나라 미국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 태도를 정치에서는 흔히 ‘토착주의’라고 옮기는 nativism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 말은 ‘반이민주의’라고 옮기기도 하는데, 이 표현의 기원이 바로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힘을 발휘했던, 토착 미국인(native American)을 내세운 정치운동이다. 아니, 미국 인디언이 이 시기에 정치적으로 각성했던가?

물론 아니다. 여기서 토착 원주민은 유럽에서 북미로 건너와 식민지를 세운 사람들의 자손으로, 단지 그 땅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토박이를 참칭한 것이다. 여기에는 그 땅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들, 즉 이민자를 자신과 차별하여 배척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당시 경제상황(특히 감자 흉작) 때문에 아일랜드와 독일에서 건너오는 많은 이민자가 그들의 적이었다. 신교 개혁파를 근간으로 한 이 정치 운동은 극우는 아니었고, 노예제만 놓고 보면 외려 가장 진보적이었다. 그럼에도 진짜 토착민을 쫓아낸 곳에 터를 잡고 스스로 토박이라고 나선 뻔뻔스러움은 이 개혁운동의 근본적 한계와 더불어, 어떤 말로 포장해도 토착주의의 근본은 텃세라는 진실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혹하게 말하면, 그들은 자기 터에 당장 위협이 되지 않는 노예에게는 관대했고 위협이 되는 이민자는 배척했다.

하지만 토착주의가 그렇게 집착하는 터 자체에 문제가 생긴다면? 가이아 빈스는 <노마드 세기>(2022)에서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빈스는 2100년이면 지구 온도가 현재보다 4도 높아질 것이며 이때 수많은 삶터가 어떻게 될지 지도로 보여준다. 지구에서 현재 추워서 살 수 없는 곳은 살 만한 곳이 되고, 열대는 아예 살 수 없는 곳, 지금 살기 적당한 곳은 살기 어려운 곳으로 바뀐 지도다(한반도는 사막화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살기 위해 이동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미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 지구 온도가 1도 오르면 10억명이 이동한다. 유엔 국제이주기구는 앞으로 30년간 환경 이주민이 15억명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빈스는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 노력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기정사실이고, 우리가 할 일은 질서 정연하게 이주하는 것뿐이다. “이주는 문제가 아니라 해결책이다.” 그러면서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들리는 어조로 인류는 자고로 이주를 통해 지구에서 살아남았으므로 이번에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우리가 특정한 땅에 속해 있고 그 땅은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지정학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은 필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말하는 인류세의 4대 재앙 가운데 하나인 폭염 기록을 경신 중인 유럽과 그곳 상황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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