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발 항공기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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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마카오공항에서의 일이다.
탑승권을 받을 때부터 시끄럽던 단체팀이 있었다.
일행으로 보이는 단체관광객들은 일제히 저항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문제의 단체 관광객들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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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의 환상타파] 전명윤 | 아시아 역사문화 탐구자
몇년 전 마카오공항에서의 일이다. 탑승권을 받을 때부터 시끄럽던 단체팀이 있었다. 카트마다 골프채를 싣고 있는 걸로 보아 인근 주하이에서 골프를 치고 마카오에서 놀다 오는 단체관광객 같았다. 그들 중 일부에게서는 술냄새가 진동했다. 게이트에서도 시끄러운 그들을 보면서, 저러다 탑승 거절당할 텐데, 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기내에 앉아 있는데, 앞쪽이 떠들썩했다. 마카오발 인천행 항공기는 새벽 두시쯤 출발해 이른 아침 도착할 예정이었다. 돈 없는 여행자는 숙소에서 체크아웃하고 열시간 넘도록 거리를 헤매야 했다. 자정께가 돼서야 공항에서 이런저런 수속을 밟고 피곤한 상태라 짜증이 났다.
정황을 보니 단체팀의 한 남성 승객이 본인의 취기를 승무원들에게 위력으로 증명했고, 사무장 판단에 따라 그 승객은 탑승이 거절됐다. 게이트 입구에서 차단했으면 나았을 텐데, 기내까지 들여놓고 탑승을 거절하니 한바탕 소동이 발생했다.
일행으로 보이는 단체관광객들은 일제히 저항했다. ‘못사는 중국 X들이 어디 감히 한국인을 무시하냐’는 투로 대응했다. 속으로 ‘마카오 1인당 평균 국민소득이 한국의 두배는 될 텐데…’라고 생각했지만, 입밖으로 내진 않았다. 실랑이 끝에 출입문이 다시 열렸고 제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들어와 문제의 승객을 끌어냈다.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문제의 단체 관광객들은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무원들이 앉으라고 했지만, 집단 항의하기로 이미 합의를 마친 모양새였다.
“저 x들이 힘없는 우리 민족을 괄시한다.” 내 앞에 앉아있던 그들 일행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갑자기 탑승객을 바라보며 방백을 하기 시작했다. 요약하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우리가 중국에 와서 힘없는 나라라고 이렇게 괄시받는데 젊은 분들 가만히 있을 거냐. 우리 모두 이 비행기에서 내려야 하는 것 아니요.’
웃음이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감히 중국 X 따위’라며 반발하던 서사가 불과 10여분 새 ‘저 X들이 우리가 힘없는 나라라고 괄시한다’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러해 동안 해외를 다니면서 한국인의 이중성에 대해서 질리게 봐왔던 터였지만, 이날의 상황은 그 이중성의 압축판 같았다. 어디에선 세상에 없는 강대국 시민처럼 고압적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윽박지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없이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 피해자 서사를 풀어낸다. 이 정반대의 정서가 한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에 의해 10여분 시차를 두고 터져 나왔다.
문제의 단체여행객 다수는 실제로 집단으로 퇴거를 요청해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미 기내에 짐을 실었기 때문에 짐을 빼기 위해 차량 한대가 와서 작업을 시작했고 시간은 하염없이 지체됐다.
이 기묘한 소동으로부터 몇년이 흘렀지만, 한국인의 정서와 관념은 그때와 얼마나 다른지 의문이다. 한국은 이제 본의든 아니든 명실상부하게 선진국 초입에 진입했다. 우리가 가진 정서는 그에 합당한 수준인가.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이고, 또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대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보는 두 정당의 견해 차이에서 보듯 여전히 온전한 답을 내지 못한 듯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2년 전 <한겨레>의 기고 청탁을 수락했는데, 그간 적절한 글을 썼는지 모르겠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한 마음으로 2년간의 연재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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