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주장이 과학 불신 조장한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왜냐면] 최기영 |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명예교수
지금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로 태평양 연안국가와 도서국가가 들끓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관련한 논란이 증폭하고 있다. 사실 활발한 공론화가 잠잠한 것보다 훨씬 건강하고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실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분석하며,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서 경청하고, 설득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국민의 안전과 국익을 위한 결론을 도출하는 긍정적 방향이 아니라, 두 진영으로 갈라져서 자기 진영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에만 올인하는 정치적 싸움의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은 무척 안타깝다.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방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언론, 소셜미디어(SNS), 유튜브 등에 의존하게 되면서 많은 오류 정보나 허위 정보도 접하게 된다. 여기에 확증편향이 더해져서 점점 더 극단적으로 잘못된 사고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싸움터에 과학자들이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가세하는 것 역시 긍정적 면과 부정적 면이 있다. 국민이 편향된, 또는 그릇된 사고에 빠지지 않고 올바르게 과학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과학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자기 연구에 몰입해서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국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살피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래도 일부 과학자가 생명을 존중하면서 인류사회에 기여하는 과학에 가치를 두고 적극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과학자조차도 편견에 빠져서 객관성을 잃거나, 자기의 좁은 전공 분야만 바라보거나, 혹은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면서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과학자 또는 전문가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기 때문에 그 영향력이 훨씬 넓은 범위에 걸쳐서 강하게 작용한다는 데 있다. 더욱이 과학자의 잘못된 편견이 정치권에 의해 악용될 경우 국가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고, 나아가 과학이나 과학자에 대한 국민적 불신을 조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과학은 어떤 현상에 대해서 적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고, 정해진 조건 아래 그 모델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만큼 정확히 맞는지 실험이나 기타의 방법으로 증명하는 논리적 과정을 다루는 학문이다. 일단 모델이 받아들여지면, 다른 장소나 시간에서도 조건만 맞으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 것인지 같은 모델을 적용해 예측할 수 있게 된다.
후쿠시마 오염수를 대량으로 수십년에 걸쳐 바다에 방류하는 것은 유례없는 시도다. 아직 그 영향을 제대로 예측할 수 있는 과학적 모델이 없다. 당연히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없다. 다핵종제거설비라고 하는 알프스(ALPS) 하나만 봐도 수많은 핵종을 얼마나 완벽하게 걸러내는지, 장기간 안정적 운용이 가능한지 등에 대해 제대로 밝혀져 있지 않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부 과학자가 알프스가 걸러낸 오염수를 마실 수 있다고 하면서 마치 오염수 방류의 안전성이 과학적으로 보장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려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알프스가 위험한 핵종들을 충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이 공개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대로 검증받으려면 필요한 데이터를 공개해서 다른 기관이나 연구자가 같은 방법을 적용해서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그 재현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다른 이유는 오염수 속 핵종이 허용 수치 이하가 되도록 걸러내고 희석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십년 동안 방류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애초에 수십년 동안 지속적으로 방류한다는 조건이 있었다면 아마도 허용 수치라는 기준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과학자로서는 조금이라도 우려가 있으면 “100% 안전하다”는 말은 하지 말자. 안전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으면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면 안전하지만 그런 조건을 다 만족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고 말하자. “오염수가 함유한 핵종이 기준치 이하면 방류할 수 있다는 임의의 규정이 있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확실한 근거도 없이 “그런 오염수를 수십년 이상 방류해도 해양 생태계에 영향을 주지 않고, 그 바다에서 채취한 수산물은 먹어도 안전하다”고는 감히 말하지 말자. 물론 반대의 논리도 적용된다. 확실하지 않으면 “무조건 해롭다”고 하지 말자. “잘 모르지만 위험하거나 해로울 수 있으니 안전성이 어느 정도 확보될 때까지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래야 국민이 지금까지 보여준 과학에 대한 신뢰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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