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고민 깊어진 과기 출연硏
출연연 내년도 20% 삭감안 제출
공공 분야서도 조정 분위기 확산
과학기술계 "졸속 예산 편성 우려
연구자간 양극화 심화될 것" 반발
윤석열 대통령이 ‘이권 카르텔 타파’를 외친 이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에 때아닌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이 내년 정부 출연금 중 주요 사업 예산의 20% 삭감안을 제출한 데 이어 각 정부 부처와 한국연구재단 등의 공공 R&D 과제 예산도 감축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 먹기식, 갈라 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같은 날 국가 R&D 사업 감사와 과기정통부 등 11개 기관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올해 각 부처와 공공기관을 통해 대학·출연연·기업 등에 지원되는 정부 R&D 예산은 31조 원이 넘는다. 이렇게 엄청난 예산이 집행되는 과정에 정부와 과제 관리 기관, 연구자 간 카르텔이 개입해 나눠 먹기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대학 교수는 “대형 과제에 관여하기 위해 과제를 기획하는 연구자나 기관에 접촉하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고 전했다. R&D 컨설팅사들이 활개를 치며 좀비기업에 R&D 예산이 흘러가는 문제도 고질병으로 꼽힌다.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가 R&D 사업 중간평가 시 ‘미흡’ 등급을 10% 이상 채우라고 각 부처에 권고했지만 올 들어 그 비율이 2.9%에 그치는 등 평가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부처 간 칸막이가 심해 R&D 과정에서 나눠 먹기가 성행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도체의 경우 산업통상자원부·과기정통부·교육부 등이 반도체 분야 대학과 대학원을 선정해 각자 지원하는 게 한 예다.
연구 현장에서는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법조·관료·노동계 등에 비하면 과학기술계에 ‘이권 카르텔’이 있다는 것은 R&D에 대한 무지를 드러내는 것” “정치적으로 접근해 졸속 예산 편성이 이뤄지고 연구자 간 양극화가 심화될 것” “과기정통부가 기획재정부에 너무 휘둘려 기초·원천 연구가 줄어들 것” 등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출연연의 한 관계자는 “아무리 세수가 덜 걷힌다고 해도 국가전략기술을 담당하는 출연연의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해서야 되겠느냐”며 “당초 소폭 삭감 예산안을 과기정통부에 냈는데 최근 ‘다시 제출하라’고 해 예산을 추가로 깎고 국가전략기술과 국제 협력을 강조한 수정안을 제출했다”고 토로했다.
올해 25개 출연연에 대한 정부 출연금은 2조 3000억 원 규모로 이 중 주요 사업 예산은 1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출연연이 내년에 삭감하겠다고 제출한 예산은 주요 사업 예산의 20%인 2400억 원가량이다. 앞서 기재부는 비공식적으로 각 출연연의 기관 운영비를 0.3%에서 최대 26.7%까지 삭감할 것을 요구했다.
한 대학 교수는 “지금은 국가전략기술이 아니면 정부 R&D 과제를 받기가 만만치 않다”며 “전략기술의 인프라 격인 초전도 연구를 하고 있지만 대형 연구 기획 과제를 제안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한 박사는 “대통령실과 기재부에서 원전 같은 발전 분야에 관심이 많아 반도체·배터리 등 첨단산업, 농업, 바이오헬스, 국방·우주 등의 분야에서 브레이크스루(돌파구)가 될 방사선 연구는 뒤로 밀리는 형국”이라고 귀띔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장이 18일 개최한 국회 토론회에서 제동국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노조위원장은 “9월 나올 수탁 사업(정부 등 공공의 R&D 과제)도 25% 삭감하라는 지시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며 “국방부 과제, 기업 공동 과제는 삭감 대상에서 제외돼 결국 원천·기초 연구가 주요 삭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김재성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 노조위원장은 “대부분의 출연연에서 연구장비와 전기세·지원인력 등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에서도 “현장이 황폐해질 것이라는 걱정이 크다”(조 의원) “정부가 ‘원장이 다친다’며 고압적으로 나와 모든 출연연이 납작 엎드렸다”(이어확 민주당 과학기술혁신특별위원회 부위원장)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이 올해 기관평가에서 ‘매우 우수’ 등급을 받고도 18일 연임에 실패하는 등 현 정부 들어 출연연 수장들의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선임됐고 ‘우수’ 등급을 받아 연임 자격을 얻은 김명준 전 ETRI 원장, 박현민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박원석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도 연임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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