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소리나자 대피 방송…45명 살린 이장
산사태 징후 미리 감지하고
주민들 회관으로 대피시켜
10분뒤 산사태 발생해 '아찔'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덮친 경북 영주시의 한 마을에서 50대 이장의 신속한 대응 덕분에 마을 주민들 모두 생명을 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주인공은 영주시 단산면 단곡2리 마을 이장 이춘길 씨(57)다. 이씨는 산사태 징후를 미리 감지하고 선제적 대피 지시를 내려 자칫 큰 인명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재난을 사전에 막았다.
이씨는 19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장 역할을 책임 있게 하려고 하다 보니 다행히 주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며 "지금도 조금만 늦게 대응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생각하니 아찔하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이씨가 산사태 징후를 감지할 수 있었던 건 빠른 예찰 덕분이었다. 지난 15일 오전 6시 20분쯤 20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던 시각. 이씨는 조종근 영주시 단산면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폭우 피해를 우려해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돌리던 조 면장은 이씨에게도 전화를 걸어왔다. 조 면장은 이씨에게 "비가 많이 오니 동네 상황을 한번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전화를 끊자마자 집을 나섰다. 이씨는 "아침에 동네를 한번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면장님 전화를 받고 급한 마음에 더 일찍 동네를 나서게 됐다"고 했다.
동네를 둘러보던 이씨는 마을 뒷산에서 특이점을 발견한다. 평소 비가 와도 멀쩡하던 산에서 물이 줄줄 흘러내리면서 마을 도로를 따라 흐르고 있는 것이었다. 때마침 한 마을 주민이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산에서 계속 '꾸우우' 소리가 난다"며 "산에서 생전 처음 듣는 소리다"고 했다. 이 전화를 받은 때가 오전 7시 20분쯤이다. 전화를 끊고 이씨도 산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여보니 진짜 산에서 요상한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눈이 번쩍 뜨인 이씨는 바로 '산사태 징후'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마을회관으로 가 주민들을 향해 "회관으로 대피하라"고 안내방송을 했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먼저 산 아래 위험 지역 집들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에게 "빨리 회관으로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이렇게 그는 전체 마을 주민 60명 중 위험 지역 주민 20가구, 45명을 20여 분 만에 모두 회관으로 대피시켰다. 그때 시간이 오전 7시 50분이었다. 그리고 10여 분 뒤 오전 8시쯤 마을 뒷산에서는 큰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토사가 흘러내려 왔다. 주택 2채는 완전 매몰됐고 각종 토사 등으로 주택 12채가 피해를 입었다.
이씨의 대응이 10여 분만 늦었어도 대형 인명 피해가 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는 "산에서 토사가 순식간에 쓸려와 마을을 덮치는 데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며 "다행히 산사태가 오전에 발생해 대응도 빨리 할 수 있었고 주민들도 대피에 잘 따라줬다"며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우리도 새벽에 산사태가 났으면 인명 피해가 컸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올해로 이장 2년 차를 맞이한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토박이다. 한평생 산사태를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이씨는 산사태의 요인으로 무문별한 개간을 지목했다. 그는 "산사태가 발생한 곳이 오래전부터 밭으로 개간됐지만 10년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 곳"이라며 "개간한 땅이 지반을 약하게 만든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현재 산사태 이후 나흘째 밤잠을 설쳐 가며 복구 작업에만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마을회관에서 숙식을 해결 중인 주민 30여 명이 하루라도 빨리 집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마음뿐이다. 영주에서는 이 마을을 제외하고 장수면과 풍기읍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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