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끼리 총구 겨눠도 우리는 파트너"
멜코모브·바라노바 공동창업자
"한국 기업들은 우리를 국제적인 상황에 비춰서 보지 않아요. 편견 없이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한 팀으로 대해주는 게 너무 고맙습니다."
2022년 2월 영국 런던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업무에 한창이었던 젊은 청년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유니버시티칼리지 런던 동창인 우크라이나 국적 소니야 바라노바(26)와 러시아 국적 일리야 멜코모브(27) 공동창업자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이들이 여행객의 세금 환급(Tax refund) 절차를 디지털화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이노벳'을 창업한 지 만 2년이 된 시점이었다. 본사는 영국에 있었지만 개발 인력은 대부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상주하고 있었다. 멜코모브 대표는 "우크라이나 카드사, 러시아 대형 은행과 각각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소식을 들었다"며 "각 국가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곧바로 중단됐고 직원들 안전도 챙겨야 해 많은 혼란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두 나라 국적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 있지만 정치적 논쟁은 이제 막 커가고 있는 스타트업을 이끌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사치'였다. 바라노바 대표는 "전쟁 소식은 충격적이었지만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 이미 10년 가까이 고국을 떠나 있었기에 다행히도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며 "정치적인 판단을 떠나 우리는 기업 대표로서 함께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러시아에서 근무 중인 개발자 2명과 우크라이나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또 다른 개발자들을 지중해 동부에 위치한 사이프러스로 이주할 수 있게끔 도왔다.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이주하는 데 약 3개월이 걸렸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경제적 부담이 컸지만, 직원들 안전을 책임지는 게 기업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오히려 비즈니스 전선에 있는 이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기업에 국가의 이미지를 비춰 보는 파트너들 시선이었다. 멜코모브 대표는 "바라노바 대표 국적이 우크라이나이고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도 또 다른 공동대표인 나의 국적이 러시아라는 이유 때문에 파트너 관계가 끊어지거나 협업하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노벳은 영국 런던에서 창업한 후 2년6개월 만인 지난해 7월 한국으로 헤드 쿼터를 옮겼다. 멜코모브 대표는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관광지 중 하나로 급부상했고 특히 많은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이유는 패션 등 소비문화 때문이지 않나"라며 "금융 기반 앱을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한국이 중요하면서도 아주 큰 시장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한국 진출 기회를 엿보던 중 중소기업벤처부가 운영하는 외국인 스타트업 정착 프로그램인 'K스타트업 그랜드 챌린지'에 초청을 받았고 이를 통해 공동창업자가 함께 한국행을 택했다. 멜코모브 대표는 "이전에도 한국이 큰 시장이라는 판단은 있었지만 러시아와 영국 등 유럽에서만 살았던 우리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는데, 비자를 비롯한 각종 행정절차와 사무실 마련 등 한국에 정착하고 적응하는 과정에서 중기부와 디캠프(은행권 청년창업재단)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는 사업을 확장하면서 내년에 한국 직원을 10명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 1년 거주하면서 한국 기업들이 열심히 일하는 문화를 접하며 큰 자극을 받고 있다"면서 "비즈니스 미팅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유럽 회사들과는 달리 한국은 언어 장벽이 있지만, 디지털 분야에 있어서는 세계 선두권인 데다 스타트업 시스템 역시 굉장히 빨리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이들 공동창업자는 한국 기업들의 편견 없는 시선에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멜코모브 대표는 "한국 파트너들은 우리의 사업 자체를 이해하고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팀' 같은 느낌을 준다"며 "오히려 지금 우리 국가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판단하기보다는 이해해주는 분위기가 고맙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묻자, 그들은 "그저 모두가 얼른 안전해지고 평화롭게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바라고 있는 것이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슬픈 상황이다. 이른 시일 안에 잘 마무리되길 항상 기도한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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