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10원 싸움'할 때 獨은 지표 따져···"이참에 결정구조 바꿔야"

세종=양종곤·신중섭 기자 2023. 7. 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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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최저임금 9860원]
◆ 110일 '최장 심의'가 남긴것
정치편향 勞, 최임위 역할 부정
기습시위 등 소모적 갈등 되풀이
37차례 심의 중 불참·퇴장 14번
"정부 정책, 노사합의 의존 잘못"
최임위 개편 요구 목소리 커져
2024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19일 박준식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 회의실에서 표결 결과가 적힌 모니터 앞을 지나고 있다. 세종=연합뉴스
[서울경제]

“정말 징글징글합니다.”

18일 오후 3시에 시작해 19일 오전 6시까지 무려 15시간에 걸쳐 진행된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가 마무리된 뒤 한 위원이 던진 말이다. 이 위원의 말에는 협의보다는 갈등만 지속하는 우리나라 노사 간 극한 대립에 대한 비판이 숨어 있다.

올해 최저임금 논의 역시 노동계의 ‘불통 협상’으로 얼룩졌다. 올 4월 18일 최저임금위원회 제1차 전원회의가 파행됐다. 근로자위원(노동계)을 양분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권순원 공익위원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회의장에서 기습 시위를 한 여파다. 이로 인해 공익위원이 회의장을 입장하지 않은 것이다. 6월 27일 제8차 전원회의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근로자위원 전원이 회의장을 나갔다. 고용노동부가 공석이 된 근로자위원 1명 자리를 대체할 위원 추천을 거부한 데 대한 항의 표시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19일 제15차 회의에서도 근로자위원 전원은 표결 직후 회의장을 떠났다. 근로자위원이 주장한 1만 원 대신 사용자위원이 제시한 9860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가 올해 110일로 최장 기간 심의를 한 ‘민낯’이다. 노동계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노사 논의·합의’ 기구인 최저임금위의 역할을 정작 스스로 부정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 모두 최저임금위에서 제대로 협상을 하지 못하다 보니 최저임금 결정은 늘 불만에 휩싸인다.

최저임금위에 따르면 올해까지 37차례의 심의 가운데 노동계가 표결에 불참하거나 표결 전 퇴장한 경우는 14번이다. 경영계도 비슷하다. 노사 모두 객관적 자료와 지표로 협상장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올해 최저임금위는 ‘이런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15년 만에 노사 합의를 눈앞에 뒀다. 합의 실패 과정은 그동안 노사가 취한 최저임금 협상 태도를 보여준다. 공익위원은 올해보다 3.12% 오른 9920원을 합의안(조정안)으로 제시했다. 이 안에 대해 사용자위원 전원이 찬성했다. 근로자위원만 찬성하면 노사공 합의였다. 하지만 8명의 노동계(9명 중 1명 해촉)가 갈렸다. 한국노총 측 근로자위원은 찬성을, 민주노총 측 근로자위원은 반대를 나타낸 것이다. 결국 노사 합의는 불발됐다.

이 선택은 노동계에 ‘부메랑’이 됐다. 공익위원은 노사 합의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표결에 부칠 최종 제시안을 노사에 요구했다. 노동계는 1만 원(3.95% 인상) 안을, 경영계는 9860원(2.5% 인상) 안을 냈다. 표결 결과 경영계 안인 9860원으로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노동계가 합의 카드(9920원)를 버린 탓에 내년 최저임금을 60원 더 올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 폭 2.5%는 역대 최저임금 인상 폭 중 두 번째로 낮다. 한 정부 관계자는 “최저임금은 10원을 올리냐, 내리냐를 두고 벌어지는 협상”이라며 답답해 했다.

최저임금 결정 이후 노사는 더 크게 갈라졌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소 영세기업과 소상공인의 바람대로 동결을 관철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쉽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노총은 “최저임금위 논의는 정부 퇴진 없이 노동자와 시민의 삶이 나아질 수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도 관심이다. 내년 최저임금은 수치적으로는 인상 폭이 낮지만 경영계는 그동안 최저임금 인상이 누적된 충격이 크다고 우려한다. 2018년 16.4% 등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이뤄진 문재인 정부는 결국 일자리안정자금으로 5조 원 규모의 재정을 풀어야 했다. 하지만 임금 지급 여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2020~2021년 최저임금 인상 폭을 1~2%대로 눌렀다.

학계에서는 최저임금위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일은 한국의 최저임금위보다 18명 적은 9명으로 구성된다. 노사를 대표하는 위원 각 3명과 노사가 추대하는 위원장, 나머지 2명은 전문위원이다. 한국처럼 위원장을 정부가 위촉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최대한 노사의 의견이 반영되도록 공정하고 효율적인 구조를 짠 것이다. 또 독일은 한국처럼 1년 단위가 아닌 2년 단위로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실증 분석을 위해 충분한 심의 기간을 두는 것이다. 그 결과 최저임금은 늘 노사 합의로 결정됐다. 최저임금위가 독일처럼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식의 급진적인 조언도 나온다.

김진영 노동경제학회장은 “최저임금은 정부 정책인 만큼 정부가 결정할 문제인데 노사 협의로 의존하는 방식이 잘못됐다”며 “경제는 불확실성을 줄여야 하는데 내년 최저임금을 6개월도 안 남은 시점에서 정하는 것도 너무 불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양종곤·신중섭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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