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썰] 탈출하려다 죽은 소들, 물에 잠긴 첫 집…수마로 아픈 '오송차도' 인근 마을

이예원 기자 2023. 7. 19.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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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집중호우 피해가 컸던 13개 지자체를 오늘(19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우선 선포했습니다. 정부는 해당 지역의 신속한 피해 복구를 위해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할 계획인데요. 여기에는 경북 예천군과 충남 공주·논산시, 그리고 오송 지하차도 참사가 일어난 충북 청주시도 포함이 됐습니다.

JTBC 취재진이 이 충북 청주시 오송읍 현장을 찾았습니다.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를 덮친 미호강의 강물은 인근 마을도 쑥대밭을 만든 상태였습니다.

폭우 피해 탈출하려다 죽은 소들


미호강 강물 범람 다음 날인 지난 16일 물이 차 있는 축사
정진예 씨가 운영하는 축사도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키우는 소 70마리 중 죽은 채 발견된 것만 7마리였습니다. 죽은 소들의 몸에는 탈출하려다 다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정씨는 "죽은 소가 더 있을 텐데 확인할 여력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여전히 축사에는 소가 움직일 때마다 찰랑찰랑 물소리가 날 정도로 물이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료도, 볏짚도 다 떠내려가서 소가 밥을 못 먹고 있어요. 저체온증으로 죽어간 소도 있을 텐데 들어가지를 못하고 있어요. 아직 물이 많이 차 있고, 당장 이 앞을 우선 치워야 하니까요."
지난 17일 여전히 물이 다 빠지지 않은 축사 모습

양계장 아래 칸 닭 '집단 폐사'



다음으로 취재진은 축사 근처 양계장에 모인 축협 직원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폭우로 죽은 닭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봉사에 나선 곽신식 씨는 "일손이 부족하대서 아침부터 나왔다"면서 "계란은 다 상하고, 닭은 많이 죽어서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습니다.

침수 피해를 입은 양계장
닭들의 생사를 가른 것은, 단순히 닭장 위 칸에 있느냐 아래 칸에 있느냐였습니다. 상대적으로 높은 곳에 있던 닭은 물에 잠기지 않아 살고, 물에 잠긴 아래 칸 닭들은 죽은 것입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늘 오전 6시 기준, 가축 79만 7000여 마리가 이번 집중호우로 폐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중 73만 8,800마리는 닭입니다.

이 일대 비닐하우스 역시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사람 키만 한 '물 폭탄'이 덮친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고요. 물 폭탄을 그대로 맞은 상추와 파 등 농작물은 힘없이 쓰러진 상태였습니다. 이번 집중호우로 피해가 접수된 농지 면적, 전국에 3만 3천 헥타르가 넘습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113배가 넘습니다.

비 피해를 입은 충북 오송읍 일대 비닐하우스

쑥대밭이 된 보금자리



오송읍 주민들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살던 집도 잃었습니다. 취재진이 직접 들어가 본 주택 내부 상황도 심각했는데요. 3살 아이와 사는 박찬도 씨 부부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었습니다. 냉장고 같은 가전 집기부터 가구, 책장 등 모든 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이 목조주택은 박씨 부부가 군데군데 직접 애정으로 만든 소중한 첫 보금자리였습니다.

충북 오송읍 주민 박찬도 씨 집 내부
"집에 와보니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물건을 밟고 다른 물건을 옮기고, 치울 수 있는 것들부터 정리했어요. 근데 무거운 것들은 저희 힘으론 도저히 안 되더라고요."
충북 오송복지회관에 마련된 이재민 임시거주시설
이렇게 생활 터전을 잃은 주민 30여 명은 이재민 임시 거주 시설로 지정된 오송복지회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재민들은 급하게 몸만 빠져나오느라 당시 입었던 옷 그대로 시설에서 제공하는 도시락을 먹으며 버티는 중입니다. 그중 저희와 이야기를 나누던 이은화 씨는 결국 눈물을 흘렸습니다.
"집에 한 번 가봤더니 문을 여는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우리 집은 다른 집보다 약간 지대가 높아요. 그래서 설마 했는데..."

"사람이 막을 수 있었던 일"



갑작스러운 수해로 황망함을 감출 길이 없는 오송읍 주민들. 바로 옆 지하차도에서 14명이 숨졌다는 사을 떠올리면, 마음은 한층 더 착잡해집니다. 박찬도 씨 같은 경우에는 아내가 출퇴근 때마다 지나가던 길이라서 더욱 그러합니다. 박씨는 미호강 일대 공사가 왜 이렇게 길어지는지가 늘 의문이었다고 말합니다.
"지역 사람들끼리는 '숟가락 공사'라고 불렀어요. 한 숟갈 공사 하면 쉬는 거냐고, 대체 언제 끝나냐고. 장마가 온다는데 제방이 제거돼 있더라고요. 걱정됐는데, 이번에 터졌더라고요."
성인 키 높이 만큼의 물이 비닐하우스를 덮친 흔적
그런데도 여전히 책임 공방만 하는 정부와 지자체를 보면 가슴은 더 미어집니다. 주민들에게는 이제 와서 '관리 주체'가 누구인지 따지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지만 그 누구도 막지 못했다는 것이 중요할 따름입니다.

"오래 살았어도 처음 봐요, 이런 건. 아들도 다쳐서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미호강 공사를 부실하게 했대요. 사람이 막을 수 있었던 일인데 너무 속상해서 뭐라 말할 수가 없네요." (주민 정진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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