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수해 중 골프’ 사흘 만에 사과···중징계 피할 수 있을까
‘수해 중 골프’ 비판에도 “괜한 트집”이라며 정면 대응했던 홍준표 대구시장이 사태 나흘 만인 19일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사과했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고개를 숙인 것이다. 국민의힘에서는 홍 시장이 당 중앙윤리위원회로부터 중징계를 받을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이뤄진 사과의 진정성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홍 시장은 이날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우가 내리던 지난 15일 골프장을 찾은 것과 관련해 “주말 일정이고, 재난대응 매뉴얼에 위배되는 일도 없었다”면서도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홍 시장은 “원칙과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수해로 상처 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홍 시장은 수해 중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음에도 전날까지 “아직도 국민정서법에 기대어 정치하는 건 좀 그렇다”며 잘못한 것이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특히 지난 17일 국회를 찾아 기자들에게 “(처신이) 부적절하지 않았다” “기자들이나 (국민) 눈높이에 맞게 질문하라” “괜히 쓸데없이 트집 하나 잡았다고 벌떼처럼 덤빈다고 내가 거기에 기죽고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냐”며 당당한 태도를 보이면서 논란을 더욱 키웠다.
홍 시장의 태세 전환은 우선 당 안팎의 비판 여론이 높아진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병민 최고위원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대권주자까지 지낸 당의 원로이고 광역자치단체장이면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는 건 상식”이라고 홍 시장을 비판했다.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경북 안동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홍 시장은 이 와중에 골프를 치고는 ‘내가 뭘 잘못했는데’라며 떼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홍 시장과 가까운 여당 인사들은 홍 시장에게 ‘당 지도부의 입장이 강경하며,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의힘에서는 홍 시장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 윤리위가 전날 저녁 직권으로 오는 20일 회의 때 홍 시장에 대한 징계절차 개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표하고 당 지도부에서 최고 수위 징계인 제명 가능성까지 거론되자 홍 시장이 태도를 180도 바꿨다는 것이다.
홍 시장 징계는 불가피하며, 사과가 징계 수위를 낮추는 데 영향을 줄지도 여론을 더 살펴봐야 한다는 게 여당 지도부와 윤리위 내부 기류다. 특히 홍 시장이 사태가 벌어진 직후 적반하장 식 태도를 보이면서 일을 키운 것이 더 문제라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윤리규칙 22조에는 당 소속 공직자가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사고 등으로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거나 국민과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경우’ 등에 ‘오락성 행사나 유흥·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국민의힘 징계 종류는 경고, 당원권 정지, 탈당 권유, 제명이 있다.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홍 시장이) 사과를 하셨기 때문에 윤리위가 판단하는 데 있어서 어느 정도 참작은 될 수 있다”면서도 2006년 홍문종 당시 경기도당위원장이 수해 중 골프를 쳐 제명된 사례를 언급하며 “그런 여러 가지 점들이 참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 관계자는 통화에서 “윤리위 회부를 앞두고 홍 시장이 울며 겨자먹기로 사과했다고 윤리위원들이 판단한다면 계속 중징계로 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윤리위에서 중징계 결정이 내려질 경우 홍 시장과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간 갈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앞서 홍 시장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에 대한 당의 대응을 두고 김 대표를 여러 차례 비판했고, 김 대표는 지난 4월 홍 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했다.
홍 시장이 당 징계를 받게 된다면 경남지사 시절인 2015년 7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지면서 당원권 정지 징계를 받은 지 8년 만이다. 홍 시장은 19대 대선 직전인 2017년 3월 징계가 풀렸다.
정대연 기자 hoan@kyunghyang.com,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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