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훈칼럼] 우물 안 K금융
M&A로 글로벌경쟁 본격화
韓금융, 좁은 내수시장서 경쟁
손쉬운 가계대출 이자장사만
록펠러 모멘트. 1989년 미쓰비시가 뉴욕 록펠러센터를 당시 20억달러를 주고 인수했을 때다. 일본 경제 거품 붕괴 직전의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 됐다.
이후 일본은 한동안 자국 내로 축소 지향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그랬던 일본이 최근 금융 분야에서 미국으로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이 정도 규모로 이동하는 것은 1980년대 말 이후 35년여 만이라고 한다. 중국을 빠져나온 글로벌 자금이 일본으로 몰려드는데 정작 일본 금융사들은 미국을 향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미즈호가 두 달 전에 기업 인수·합병에 강점을 가진 미국 투자자문사 그린힐을 5억5000만달러를 주고 인수했다. 이에 앞서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그룹은 미국 투자은행 제프리스파이낸셜 지분을 종전 4.5%에서 15%로 늘리기로 했다. 목적은 분명했다. 인구 감소로 내수시장이 급격히 쪼그라들고 있는 일본에 남아선 생존을 위협받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일본 기업의 인수·합병을 돕고, 운용자금도 수익이 높은 미국으로 옮기자는 전략이다.
지난주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비슷한 얘길 했다. 홍콩에 근거지를 두고 주로 한국에서 인수·합병 사업을 하는데, 앞으로는 사업의 상당 부분을 미국에서 진행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은 자체 현금 보유가 크게 줄어 국내 기업 인수에 소극적인 데다, 기업이 투자를 하더라도 시장이 큰 미국으로 대거 옮겨가고 있어서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미·중 갈등으로 신냉전이 펼쳐지면서 요동치고 있다. 금융사들은 중국에서 뺀 자금을 옮기는 방대한 작업과 함께 해외 거점 이동과 인력 재배치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주 말 일제히 열렸던 국내 금융사들의 하반기 전략회의 결과는 다소 실망스럽다. 물론 이자장사 비판 여론을 의식해 대외적으로만 '선한금융' '신뢰' '상생'을 하반기 전략 핵심 키워드로 내세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이게 전략일 순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급변하는 금융시장에 대한 글로벌 전략 언급이 없었던 점은 아쉽다. 일본 금융사들은 미국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는데, 한국은 좁은 내수시장을 두고 한가한 얘기다. 마땅히 자금을 굴릴 곳이 없다고 언제까지 손쉬운 가계대출 경쟁에만 매달릴 것인가. 기업금융을 제대로 하는 시중은행도 없지 않은가.
한때 기업들이 아시아로 몰려간 적이 있다. 두 가지 이유다. 성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가 앞선다. 아시아에서 성공 경험을 교두보로 미국 같은 선진시장으로 가겠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금융은 현지 규제당국이라는 커다란 변수에 번번이 막혔다. 설령 성공해도 선진국으로 진출하는 것은 쉽지 않다. 선진 금융 시스템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미 선진국으로 직진해 글로벌 기업과 맞붙고 있다. 삼성과 현대차, LG는 이미 오래됐고, IT 기업이 뒤를 따랐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웹툰을 앞세워 일본을 거쳐 유럽과 미국을 공략하고 나섰다. 하지만 금융은 어떤가. 한국 대부분 분야에서 'K'를 앞에 붙이며 글로벌 경쟁에 나서고 있는데 금융만 예외다. 단순히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 해외 투자자에게 설명만 잘하는 게 글로벌 전략은 아니다. 일본을 거쳐 월가를 노리든가, 차라리 월가를 바로 겨냥하기 위한 전략을 짤 때다.
최근에 만난 보험사 대표는 현지 사무소나 지점을 통한 해외 진출은 한계가 있고, 일본처럼 어느 정도 제대로 된 미국 금융회사를 인수해 맞붙어볼 때가 됐다고 했다. 미국 사모펀드 지분이라도 일부 사두면 인수금융 때 일부 업무를 맡아 직접 참여할 기회라도 얻을 수 있다. 때마침 금융당국이 해외 진출 관련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했다. 당국이 얼마나 의지를 갖고 실행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이제 '우물 안 K금융' 오명은 벗어야 하지 않겠나.
[송성훈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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