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24시] ISD 논리를 따지기 앞서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2023. 7.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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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건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은 통상 3명의 재판부로 구성된다. 해당 소송을 주관하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공정성 시비를 피하기 위해 해당 기관 소속 재판관을 ISD 중재 목적으로 두지 않는다. 대신 엘리엇 측에서 1명, 한국 정부 측에서 1명, 그리고 각기 선임된 재판부 2명의 합의하에 의장중재인 1명을 선임해 총 3명으로 재판부를 짠다. 이러한 PCA의 재판부 운용 방식은 나름 그 공정성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 18일 공개된 전체 판결문을 보면 이렇게 구성된 3명의 재판관은 만장일치로 엘리엇 측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도 론스타 사건 때는 우리 정부가 추천한 판정부의 반대 의견이 있었던 것과 대조적이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지시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국민연금공단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대법원 국정농단 판결문 등이 그대로 인용됐다. 흘러간 줄로만 알았던 국가의 치부가 자꾸 들춰진다.

취소 소송에 나서겠다고 밝힌 법무부는 이번 재판부의 논리를 충분히 깰 수 있다는 입장이다. 재판부는 부당 개입이 있었다는 점을 들어 국민연금이 '사실상'의 정부기관이라 봤다. 그렇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상 정부기관이면 정부기관이지 '사실상' 정부기관이라고 볼 법적 근거는 없으며, 의결권 행사도 그 자체를 본질적으로 정부적 행위라 해석할 수 없다는 게 법무부의 반박이다. 물론 일리는 있으나, 세세한 법 규정의 허점을 기술적으로 파고들겠단 인상을 받는다. 이를테면 완전한 무죄가 아닌 '증거 불충분'을 노리는 느낌이다. 그렇다고 대법원이 인정한 부당 개입 사실을 부인할 순 없기에 우리 정부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ISD가 투기자본의 배만 불려준다는 비판을 받지만, 엄연히 현실로 존재하는 제도다. 제소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그런 빌미를 주지 않는 것뿐이다. 우리 최고 법원이 부당 개입을 인정해버린 마당에 이걸 없던 일로 돌리기는 쉽지 않다. ISD와 끝까지 다투는 것과는 별개로 무엇이 이 사태를 야기했는지에 대한 반성이 필요해 보인다.

[안정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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