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가재난대응체제 역할조정과 분권화 절실하다
최근 550mm가 넘는 극한 호우로 댐 범람, 둑 붕괴, 산사태, 지하차도 침수 등으로 다수의 사망·실종자와 이재민 발생으로 온 나라가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 포항지역 침수 피해와 이태원 인파밀집 사고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비극이 되풀이된 것이다. 현 국가재난대응체제는 1995년 지방자치제 도입 이전 시스템에다 약간 덧칠을 한 수준으로 복합적이고 국지성 재난대응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철 지난 옷을 입고 새 계절을 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2014년 세월호 사고 후 청와대 등에서 안전관련 회의를 50회나 했고, 8년 간 9번의 진상조사에도 침몰 원인을 결론내지 못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변화로 극한 천재지변이 빈번한 재난환경 성찰과 중앙집권적 대응체계에 내재된 구조적·비구조적 부조리를 해소해야 하는 까닭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듯이 혁신은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숙명적이다. 그럼에도 국민보호를 위한 재난대응체제 혁신은 한 순간도 멈출 수 없다는 맥락에서 개선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국가재난대응 컨트롤 타워 기능 재조정이다. 중앙재난대책본부와 중앙사고수습본부의 역할 중복으로 인한 부작용, 재난 대응시 중대본의 보좌기구로 전락 중수본 그리고 외교·원안위원회·행안부 장관의 중대본부장과 중수본부장 겸직 등의 모순 해소가 필요하다. 즉 중대본을 ‘(가칭)중앙재난사고수습본부(국무총리)’로, 중수본은 ‘(가칭)중앙재난사고대책본부’로 역할기능을 조정하고, 지역대책본부의 초기대응 책임을 법규화해야 한다. 총리의 재난정보공유, 의사결정보좌를 위해 서울정부청사 재난상황실을 국무조정실로 이관하고, 대통령실 재난업무는 국정상황실보다 국가안보실에서 맡는 게 더 효율적이고 재난안전비서관도 필요하다.
둘째, 재난현장 기관의 상황보고 대상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재난발생 기관의 골든타임 대응·복구를 가로막는 구조적인 요인 중 하나다. 현장대응도 벅찬데 기초·광역단체, 유관기관, 업무소관 부처, 행안부, 대통령실 등 10개 이상 기관에 보고에 매달리다 적기 대응을 놓치고 있다. 상황보고는 1차 상급기관과 지자체·소방·경찰 등 필수기관에 한정하고, 지대본의 중대본 보고도 폐지해야 한다. 중앙정부 권한을 지자체에 대폭 위임해 그들의 책임성·자율성·독립성을 보장하고 지원해야 한다. 지자체의 강 건너 불구경 대응행태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셋째, 지자체의 재난대응 1차 책임 법규화와 리더십을 강화해야 한다. 그간 수많은 재난에서 지자체 대응역할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것은 지자체의 재난대응 책임소재가 모호했기 때문이다. 주민보호라는 포괄적 책무를 망각하고 허둥대다 책임회피성 발언으로 국민적 분노를 산 지자체장이 한둘이 아니다. 그러니 국가는 어디 있었느냐는 절규가 나오는 것이다. 향후 시도지사에게 재난사태 선포권을 주고 그들의 리더십 역량 강화 그리고 재난업무를 평가해 그 결과를 언론에 공개하여 경각심 고취와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
끝으로, 안전의 가치와 철학을 재정립해야 한다. 한국의 압축 경제성장 정책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반면 안전은 도외시한 측면이 있다. 인간의 존엄과 생명 존중은 한낱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었고, 안전 불감증은 우리 사회의 고질병으로 똬리를 틀었다. 끊임없는 산업재해와 재난으로 인한 기회비용 증가는 국가와 기업의 성장 동력을 갉아 먹는 암적 존재로 여전히 상존하고 있어 제거가 필수적이다. 우리사회를 재난의 공동정범으로 내 모는 방재(防災)라는 허상에서 벗어나 감재(減災)기반의 실용적 재난관리가 절실하다.
우리는 지금 예측 불가능한 전례 없고 다양한 미래 재난을 마주하고 있다. 그간 지자체 도입을 외면한 채 국가주도 재난대응체제로 엄청난 대가를 치러왔다. 보호해야 할 국민의 삶 피륙이 찢어지고 사회 공동체를 허물었던 시행착오 되풀이를 이번에 확 바꿔야 한다. 재난을 이용한 정치 쇼로 국민을 기망하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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