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아침에] 한국판 ‘매그니피센트7’이 나오려면

임석훈 논설위원 2023. 7. 19.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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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혁신 주도 美7대 테크株 고공행진
애플 시총 3조달러, 佛 GDP 앞질러
韓 ‘모래주머니’ 그대로, 신산업 정체
규제 혁파 구호 넘어 실천해야 활로
[서울경제]

2016년 9월 국내 개봉한 미국 액션 블록버스터 ‘매그니피센트7’. 이 영화는 1960년대 서부영화 ‘황야의 7인’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7인의 무법자들이 정의가 사라진 마을을 지키기 위해 한데 모여 통쾌한 복수에 나서는 것이다. 덴절 워싱턴, 이선 호크, 크리스 프랫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했고 배우 이병헌도 열연해 화제를 모았다. ‘매그니피센트(magnificent)’의 뜻은 ‘위대한’ ‘참으로 아름다운’ 등이다.

7년 만에 매그니피센트7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에는 주식시장이다. 요즘 미국 월가에서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힘입어 주가가 급등하며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고 있는 7개의 테크 기업을 매그니피센트7이라 부른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페이스북의 모회사 메타 등이다. 이들 7대주(株)의 시총 합계는 최근 11조 달러에 달했다. 선두 주자인 애플은 지난달 30일 전 세계 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시총 3조 달러(약 3800조 원) 고지에 올라섰다. 애플의 기업 가치는 경제 규모 세계 7위인 프랑스의 연간 국내총생산(GDP·2조 7791억 달러)을 앞질렀다. 한국의 연간 GDP(1조 6733억 달러)의 1.8배다.

모건스탠리는 “현재 기업 가치가 2조 달러인 MS도 빠르면 2024년 세계 두 번째로 3조 달러에 도달하는 ‘메가캡(초대형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는 반도체 업체 중 처음으로 기업 가치 1조 달러에 진입했다. 매그니피센트7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AI다. 모건스탠리는 “생성형 AI는 소프트웨어에 의해 자동화될 수 있는 비즈니스를 크게 확장시킬 것”이라며 애플 등 7대 테크 기업이 이 같은 비즈니스를 수익화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다고 분석했다. MS와 메타는 18일 AI 분야에서의 전략적 제휴를 전격 발표했다.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AI를 앞세워 새 이정표를 세우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 빅테크들은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네이버·카카오는 아직 챗GPT 같은 생성형 AI 서비스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향후 최대 격전장이 될 AI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진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5월 말 현재 글로벌 100대 유니콘(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사) 가운데 한국 업체가 단 한 곳뿐인 게 우리의 현실이다. 기업 전체를 놓고 봐도 2010년 이후 글로벌 100대 기업에 새로 진입한 곳이 없다. 우리나라 산업의 혁신 역량을 보여주는 현주소다.

AI가 몰고 올 산업 지각변동에서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으려면 무엇보다 기업 투자와 혁신의 걸림돌인 규제 철폐가 시급하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가운데 8개는 규제로 인해 한국에서 사업하기가 아예 불가능한 실정이다. 현 정부도 출범 이후 규제를 ‘모래주머니’ ‘신발 속 돌멩이’ 등에 비유하며 규제 개혁을 강조해왔지만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불합리한 규제는 아직도 널려 있다. 원격진료 등 신산업 분야의 규제 족쇄 제거는 지지부진하다. 코로나19 방역 해제 후 비대면 진료의 대상이 초진이 아닌 재진 환자 중심으로 축소되면서 관련 플랫폼 업체가 고사 위기에 직면했을 정도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규제 완화 추진 경과를 추적해보니 첨단산업 분야에서 4년 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된 규제 사항 중 올해 4월까지 개선된 비율이 9%에 불과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회의에서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을 막는 결정적 규제를 팍팍 걷어내달라”면서 “단 몇 개라도 ‘킬러 규제’를 찾아 신속히 제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의 언급은 기업 투자와 혁신을 끌어낼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는 절박감에서 나온 주문일 것이다. 그만큼 기업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가 여전히 많다는 뜻이다. 현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2개월이 훌쩍 지났다. 신산업 규제 혁파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요란한 구호에 그치지 말고 불굴의 의지로 규제 개혁을 실천해야 우리 경제가 침체의 터널에서 벗어나 활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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