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배터리 시장, 제도 뒷받침돼야 산업화"
에너지저장장치 재사용가능
배터리 파쇄후 재활용 때도
GR 인증 통한 품질보증 추진
전기차 보급이 빨라짐에 따라 폐전기차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양의 사용 후 배터리는 제도적 정비 없이는 재활용되기 어렵다. 사용 후 배터리는 수명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재사용,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에는 방전 후 파쇄해 고부가가치 금속을 회수하는 재활용을 거치게 된다.
이 중 재사용은 기존에 사용되던 곳에 그대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전기차에 사용되던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에 사용하거나, 가로등·캠핑용 대용량 배터리(파워뱅크) 등에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사용 후 배터리는 제품의 남은 수명이나 안전 관련 성능이 새 제품에 비해 들쭉날쭉할 수 있다. 그런 만큼 사용 후 배터리를 활용해 제품을 출시하면 제품마다 성능이 일정하지 않을 수 있고 배터리 안전에 대한 우려마저 나올 수 있다.
정부와 관계 기관은 이런 우려에 대응하기 위해 예비안전기준을 만드는 한편 올 10월 공식 기준을 내놓을 계획이다. 진종욱 국가기술표준원장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용량이나 절연, 기능안전평가 등 검사 방법을 예비안전기준으로 제공했다"며 "검사 시간 단축과 소프트웨어 검사 기법을 보완 중"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ESS에 활용할 때도 대형 ESS나 소형 ESS에 필요한 안전기준이 다를 수 있고, 캠핑이나 야외에서 파워뱅크로 쓸 때도 사용 환경이 다르다. 진 원장은 "지난해 10월 전안법을 개정했으며 올해 10월까지 1년 유예기간을 두고 대응 기준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표원은 배터리 재사용의 효율화를 위해 사용 후 배터리를 '팩' 단위로 검사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배터리 팩을 분해해 모듈 단위로 하나씩 검사하던 기존 방식에 비해 검사 효율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소프트웨어(SW)를 활용한 검사 방식도 도입된다. 연 1만대 이상 배출될 사용 후 배터리 검사를 위해 소프트웨어 분석으로 배터리 수명이나 안전 상황 등을 점검하도록 돕는 방식이다.
사용 후 배터리를 재사용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한계인 '간헐성' 해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태양광은 낮 시간, 풍력은 바람이 많이 부는 시간에만 전력 생산이 집중되는 특성이 있어 전력 수요와 생산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이종영 중앙대 명예교수는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ESS 사용이 가장 중요하다"며 "전기차를 10년간 타고 다니더라도 배터리는 여전히 70~80% 성능을 발휘하기에 이를 ESS에 투입하면 된다"고 말했다.
배터리를 파쇄해 이 안에 들어 있는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등 고부가가치 금속을 재활용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다. 통상 사용 후 배터리 재활용은 △배터리 방전 △배터리 파쇄 △파쇄된 물질 내 금속 회수 △회수한 금속을 활용한 배터리용 양극재·음극재 제조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배터리를 방전시키고 파쇄해 금속을 회수하는 과정은 각 민간기업의 기술력에 따라 절차가 다르다. 정부 역할은 이렇게 생산된 재활용 금속의 표준을 만드는 일이다. 국표원은 재활용 소재의 표준을 개발하는 한편 우수재활용제품(GR) 인증 제공을 준비하고 있다. 진 원장은 "재활용 기업은 고부가가치 금속을 회수해 판매하려고 하지만 고객사에서 순도 등을 문제 삼을 수 있다"며 "국표원이 표준 물질을 만들고 이 조건을 달성했는지 확인하는 시험방법을 개발할 계획"이라고 했다. 재활용 소재의 품질이나 부가가치를 두고 옥신각신하는 대신 상호 신뢰가 가능한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산업부는 산업계 건의를 반영해 사용 후 배터리에서 추출한 리튬, 코발트 등 물질의 품질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품질 기준이 만들어지고 나면 재활용 원료의 보급과 수급 안정화를 위해 △황산니켈 △황산망간 △황산코발트 △탄산리튬 △수산화리튬 등 주요 원료의 순도, 불순물 함량 등 품질 관리를 강화할 계획이다.
진 원장은 "여기에 더해 사용 후 배터리 추출 원료의 GR 품목 지정을 진행 중"이라고 했다. GR 제품에 선정되면 정부가 품질을 보증할 뿐 아니라 조달청이나 공공기관 구매 때 의무구매 대상이 된다.
10월 19일 재사용 전지 안전성 검사제도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국표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제도 시행을 지원하고 있다. 오는 26일 안전성 검사기관 지정 접수를 위한 사전공고를 낼 계획이며, 제주도에서 설명회를 개최한다. 추가 제도 설명회와 공청회를 열고 제도 시행을 위해 적극 홍보한다는 방침이다.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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