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정전협정 열흘 전 사망한 美 전쟁영웅…시신 옆에는 적군 시신 37구

박영준 2023. 7. 19. 17:01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에서 북한군 수십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지킨 공로로 미 최고 영예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전쟁영웅 찰스 프랭크 펜들턴(사진)을 재조명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펜들턴은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7월16일 전투에서 고지를 뺏기 위해 진군하는 북한군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 약 15명을 사살하고 수류탄 공격을 통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국 국방부가 6·25전쟁에서 북한군 수십명을 사살하며 고지를 지킨 공로로 미 최고 영예 명예훈장(Medal of Honor)을 받은 전쟁영웅 찰스 프랭크 펜들턴(사진)을 재조명했다. 

미 국방부는 17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육군 상병 펜들턴을 소개하는 글을 게시했다. 

1931년 테네시주 캠던에서 태어난 펜들턴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3월 제3보병사단 제15보병연대 소속으로 참전, 현재 북한 개성시 일대로 추정되는 고지 방어전에서 기관총 사수로 전투에 임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펜들턴은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7월16일 전투에서 고지를 뺏기 위해 진군하는 북한군을 향해 기관총을 발사, 약 15명을 사살하고 수류탄 공격을 통해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북한군은 펜들턴과 부대의 저항에 밀려 후퇴했다가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진지를 습격했다.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이 근처에 떨어지자 펜들턴은 재빨리 수류탄을 집어 들어 적군 쪽으로 던져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펜들턴은 그러나 적의 수류탄 공격에 가슴과 어깨를 크게 다쳤고, 과열된 기관총에 화상을 입었다. 펜들턴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지만 치료를 거부하고 전투를 계속했고, 기관총이 파괴된 뒤에는 소총을 들고 싸우다 적의 박격포 공격에 사망했다.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미군이 펜들턴을 다시 찾았을 때 적군 시신 37구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펜들턴이 숨을 거둔 날은 정전협정을 열흘 앞둔 1953년 7월17일, 그의 나이 21세였다. 한국으로 파병되기 6개월 전 펜들턴과 결혼한 아내가 남편이 사망한 이듬해인 1954년 1월18일 대신 명예훈장을 받았다. 미 국방부는 “펜들턴의 불굴의 용기는 숨을 거둔 뒤에도 전우들에게 적을 격퇴하고 고지를 사수하도록 영감을 주었다”고 기억했다.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yjp@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