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스완과 K팝의 확장

홍혜민 2023. 7. 19.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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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 韓 멤버 없이 전원 외국인 멤버로 구성된 첫 K팝 그룹
한국인 멤버 없지만 K팝 정서·시스템 속 탄생...K팝 확장 가능성 제시
그룹 블랙스완. 디알뮤직 제공

오랜 시간 'K팝 가수'의 정체성은 정통 K팝 육성 시스템을 거쳐 국내에서 데뷔한 이들을 의미한다고 여겨왔던 음악 시장에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됐다. K팝 육성 시스템을 통해 탄생한 그룹이 곧 넓은 의미의 K팝 아티스트라는 새로운 정의가 도입된 지금, '국내에서 데뷔한, 한국인 멤버 없는 K팝 가수'라는 생소한 개념이 K팝의 세계화에 발맞춰 우리 앞에 등장했다.

지난 2020년 데뷔한 블랙스완(BLACKSWAN)은 당초 한국인 멤버와 외국인 멤버가 함께 소속된 다국적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이후 한국인 멤버들이 팀을 탈퇴하고 외국인 멤버들이 빈자리를 채우게 되면서 멤버 전원이 외국인으로 구성된 최초의 K팝 그룹이 됐다. '시그너스 프로젝트'라는 소속사의 특별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재편된 현 블랙스완의 멤버는 벨기에 출신 파투·인도 출신 스리야·브라질 태생 독일 출신 가비·미국 출신 앤비 4명이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K팝 그룹 육성 시스템을 통해 데뷔한 아이돌 그룹의 경우, 한국인 멤버를 중심으로 해외 활동을 겨냥한 외국인 멤버들이 함께 포진해 있는 것과 달리 블랙스완은 한국인 멤버 없이 외국인 멤버만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실제로 국내에서 전원 외국인으로 구성된 K팝 그룹이 탄생한 것은 블랙스완이 처음으로, 이들은 멤버 개편 이후부터 국내외 K팝 팬들의 관심을 모아왔다.

외국인 멤버들로 구성됐지만 이들을 여타 그룹과 다르지 않은 'K팝 그룹'으로 명명하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어 가사로 이루어진 노래로 국내에서 활동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로 블랙스완은 최근 디지털 앨범 '댓 카르마(That Karma)'로 재편 후 첫 컴백에 나선 뒤 각종 국내 음악방송에 출연하며 한국어 가사로 이루어진 타이틀 곡 '카르마'로 활동을 이어왔다.

이는 K팝 시스템을 통해 해외에서 결성돼 해외 활동에만 주력하지만 뿌리는 'K팝 아이돌'에 있다고 주장하는 몇몇 아이돌 그룹과도 확연히 차별화되는 행보다. 해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어른 앞에서 다리를 꼬는 행동은 건방진 것이며 존댓말과 반말의 구분 등 한국의 예의범절을 배우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라는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 블랙스완 멤버들은 단순히 K팝 시스템으로 탄생한 해외 그룹이 아닌 영락없는 'K팝 가수' 그 자체다.

다양한 국가 출신의 외국인 멤버들로 구성된 만큼, 해외 시장에서의 반응도 뜨겁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K팝'에 두고 앞으로도 국내를 중심으로 한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해외에서 사랑을 받으며 활동을 할지언정, 해외에서 활동하는 해외 가수가 아닌 '해외 활동을 전개하는 K팝 가수'라는 점을 확실히 내세운 것이다.

해외 언론들은 블랙스완의 차별화된 행보를 주목하며 멤버들의 고향인 미국 벨기에 인도 브라질 독일 등에서의 입지 확장에 대한 기대를 내비쳤다. 특히 해외 매체들은 블랙스완의 '멜팅 포인트'로 남미 시장을 꼽으며 K팝과 라틴팝 음악권의 협업 시너지에 대한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이른바 'K팝 3.0' 시대에 쏟아지던 다양한 의문을 해결함과 동시에 K팝의 새로운 확장 가능성을 제시하는 유의미한 행보다. 지난해 기존 K팝의 정체성은 그대로 가져가되 국적과 언어의 경계가 보다 희미해진 형태를 일컫는 'K팝 3.0' 시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JYP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일본인 걸그룹 니쥬(NiziU) 등이 등장했지만 일각에는 여전히 '이들을 K팝 아티스트로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산재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의문은 K팝 시스템을 거쳐 탄생한, K팝 정서를 그대로 가진 외국인 멤버들로 구성된 블랙스완의 등장으로 어느 정도 해소점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다수가 공감할 만한 'K팝의 정체성'은 유지하되, 해외 시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그룹이 긍정적인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다.

블랙스완의 탄생과 앞으로의 행보는 향후 K팝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한국인 멤버를 중심으로 이끌어 온 K팝 그룹이 해외 시장에서 K팝의 지평을 한 차례 넓혔다면, 이제 보다 확장된 의미의 K팝 그룹들이 해외 시장에서 K팝의 스펙트럼을 또 한 번 넓힐 차례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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