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즈상 그후 1년]③ ‘허준이’라는 명품 브랜드…수학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앴다
국내외 석학, 젊은 수학자 함께 난제 연구
“필즈상 수상 이후 수학계서 한국 위상 높아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지 1년이 됐다. 허 교수의 수상을 계기로 한국 수학계의 위상이 높아지고,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늘고 있다. 하지만 허 교수 같은 최상위 수학자의 부상과는 별개로 한국 수학이 처한 현실 자체는 여전히 암담하다는 지적도 있다. 조선비즈는 4회에 걸쳐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수학계에 불어온 새로운 변화의 바람과 현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조명한다.[편집자 주]
“그동안 글로벌 수학계에는 알게 모르게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다. 좋은 결과를 내더라도 학계에서 인정을 잘 안 해줬다. 그런데 허준이 교수가 필즈상을 받으면서 우리에게도 ‘허준이’라는 명품 브랜드가 생긴 거다. 전 세계 어디든 수학계에서는 이제 허준이라는 이름만 대면 다 안다. 이걸 바탕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없이 우리도 연구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게 된 거다.”
김영훈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장(고등과학원 수학부 교수)
고등과학원에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의 이름을 딴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가 문을 열었다. 허 교수가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받은 지 딱 1년 만이다.
고등과학원은 19일 오후 서울 홍릉의 수림문화재단에서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 개소식을 개최했다. 이날 개소식에는 허 교수를 비롯해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KAIST) 총장, 유욱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장, 노도영 기초과학연구원장,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 등 국내 과학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문을 연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는 기존에 있던 고등과학원의 수학난제연구센터를 확대·개편한 것으로 수학계 인재 양성과 수학 난제 연구, 국제 공동연구와 네트워크 거점 역할을 하게 된다. 허준이 펠로십에 선정된 라준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박사 후 연구원, 박현준·최인혁 고등과학원 박사 후 연구원도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에 소속돼 자유로운 연구에 나설 예정이다. 허준이 펠로십은 만 39세 미만의 청년 수학자에게 소속에 상관없이 매년 1억원 안팎의 연구비를 최대 10년간 지원하는 제도다.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 소장은 허 교수의 서울대 학부와 석사과정 지도교수를 맡았던 김영훈 고등과학원 교수가 맡았다. 김 교수는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전 세계 수학계의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허준이 교수의 이름을 딴 연구소와 펠로십이 생기면서 우수한 인재를 해외에 뺏기지 않고 국내 수학계를 이끌어갈 인재로 키울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리더급 연구자를 발굴하고 육성해서 20년 안에 필즈상을 수상하는 게 목표다. 허 교수가 이미 받았지만 한 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한 번 수상자를 배출해야 한국 수학계의 위상이 굳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출범하는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는 소장을 맡는 김 교수 아래에 국내 석학과 해외 석학을 한 명씩 두고 그 밑에 CMC펠로우 6~7명으로 운영된다. 연구소가 자리를 잡으면 추후 국내 석학 교수를 1명 늘리고, CMC펠로우 10명에 허준이 펠로우도 10명으로 늘린다는 게 김 교수의 계획이다.
기존에 있던 수학난제연구센터와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는 뭐가 다른 걸까. 규모도 규모지만, 영재 교육의 기능이 추가된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그는 “기존 센터에는 영재 교육 기능이 없었는데 차기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영재를 미리 발굴해서 교육하는 기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의 말대로 이날 문을 연 허준이 수학난제연구소와 허준이 펠로십은 다음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한 핵심적인 인프라다. 수학계에서는 허 교수가 한국 수학계에 준 선물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변화기 때문이다. 국제수학연맹(IMU)은 지난해 한국의 수학 국가등급을 최고 등급으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최고 등급은 단 12개국만 받은 것으로 필즈상 수상자 배출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해외의 유명한 수학 석학을 한국에 초청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이후에는 다들 한국에 오고 싶어하는 분위기”라며 “젊은 연구자나 학생들 입장에서도 롤 모델이 생겼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기고 더 잘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도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 같은 대업은 한국에서 어떤 형태로든 이어져야 한다”며 “허 교수가 수련하던 우수한 연구공간에 필적하는 터전을 마련해 후배들이 수많은 난제와 수학적인 대련을 꾸준히 해나갈 수 있게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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