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발·백인·8등신 ‘바비’가 유쾌하게 꼬집는 가부장제···핑크 코미디 ‘바비’[리뷰]
올해로 64세. 1959년 3월9일 미국 장난감 박람회에 처음 등장한 바비 인형의 나이다. 마텔사가 출시한 바비는 검은색과 흰색이 교차된 줄무늬 수영복을 입고, 굽 높은 샌들과 나비모양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나타났다. 팔다리가 통통한 3등신 아기 인형이 여아들의 옆자리를 꿰차고 있던 때, 갑자기 등장한 8등신 ‘글래머’ 인형이 완구시장을 휩쓸었다.
이후 다양한 직업의 바비 인형이 출시됐다. 패션 모델, 교사, 트럭운전사, 의사, 가수, 우주비행사, 대통령, 하키선수, 소방관…바비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마텔의 창립자인 루스 핸들러는 소녀들이 성인의 형상을 한 인형을 갖고 놀면서 미래를 꿈꿀 것이라고 믿었다.
바비는 소녀들에게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몸을 선망하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비가 주로 금발 백인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이후 다양한 인종, 몸을 가진 바비 인형이 출시됐다. 하지만 여전히 ‘바비 인형’ 하면 떠오르는 것은 금발, 백인, 글래머인 최초의 바비다. 영화 <바비>에 등장하는 청소년 사샤(아리아나 그린블랫)는 “바비가 페미니즘을 50년은 후퇴시켰다”고 말한다. 바비는 페미니즘과 다양성의 적일까, 아군일까.
그레타 거윅 감독의 영화 <바비>는 바비를 둘러싼 복잡한 맥락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바비와 켄, 앨런 등 마텔사의 인형들은 바비랜드에 살고 있다. 바비랜드는 그야말로 바비들의 세상이다. 대통령도 바비, 건설노동자도 바비, 경찰도 바비, 소방관도 바비다. 법원에서도 바비들이 판결하고, 의회도 바비들이 차지했으며 노벨 문학상 등 각종 시상식에서도 바비만이 호명된다. 바비의 남자친구 역할로 출시된 켄은 그냥 켄이다. 바비 주변을 맴돌며 바비가 바라봐주기만을 바란다.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에 나오는 여성 중심의 평행세계가 연상된다. 이곳의 바비들은 자신들 덕분에 현실 세계의 여성들 또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는다.
마고 로비가 연기한 ‘전형적인 바비’는 바비랜드에서 매일 완벽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죽음’이라는 개념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 바비의 하루는 점점 ‘인간적’이 된다. 항상 개운하던 아침이 이젠 찌뿌둥하다. 샤워기에서는 차가운 물이 나온다. 토스트는 타버리고, 우유는 상했다. 이뿐 아니다. 하이힐 모양대로 허공에 떠있던 발뒤꿈치가 땅에 내려 앉는다. 허벅지 뒤에는 셀룰라이트가 울룩불룩 튀어나온다.
바비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 세계로 향한다. 그곳에서 자신을 가지고 노는 여자아이를 만나야 한다. 바비를 좋아하는 켄(라이언 고슬링)은 몰래 이 여정에 따라나선다. 현실 세계에 도착한 바비는 캣콜링을 하거나 엉덩이를 만지는 등 자신을 물건 취급하는 남성들에게 적응하지 못한다. 켄은 화폐에 남자 얼굴만 가득하다는 사실에 놀라고, 대통령·대법관·회사 임원 등이 남성이라는 사실에 감동한다. 바비가 자신을 가지고 노는 소녀를 찾는 사이 켄은 가부장제를 바비랜드에 수입하기로 마음먹는다.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하고 단순하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비 인형은 언제나 웃고 있으며 멋진 직업과 티 없는 피부를 가지고 있다. 야망 있고, 비범하다. 현실의 인간은 우울증을 겪기도 하고, 피부엔 셀룰라이트와 주름이 자리 잡고 있다. 먹고살기 바쁘고,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현실 여성 글로리아(아메리카 페레라)와 사샤는 바비와 함께 모두 있는 그대로 괜찮다는, 평범하지만 내면화하기 어려운 명제를 향해 나아간다.
단순한 사고를 가진 인형들과 인형을 닮은 마텔사 임직원들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낸다. 우왕좌왕하는 마텔사 직원들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움파룸파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무엇보다 유쾌한 것은 농담 거리가 된 현실 세계다. 바비랜드에서 온 인형들이 현실세계를 만날 때, 관객이 당연하게 여기는 현실은 우습고 낯설어진다. 바비는 미스 유니버스 후보들이 수영복만 입고 있는 사진을 보며 “어머 저것 봐, 대법관들이네”라고 말한다. 마텔사에 들어가 남성으로만 구성된 임원진을 만날 때는 “혹시 여성 임원과 대화할 수는 없나요?”라고 묻는다.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바비랜드 세트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형들의 춤과 음악도 흥겹다. 거윅 감독의 전작들과 달리 감동이나 영감을 받기보다는 가볍게 웃고 싶을 때 보기 좋다. 19일 개봉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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