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지나친 곳인데…경찰견 ‘볼트’, 예천 실종자 찾았다
최근 21건 수색 실적…최고 냄새 전문 경찰견 대우
지난 18일 낮 12시쯤 예천군 감천면 진평리 마을회관에서 50m 떨어진 지점. 이 일대를 지나던 한 경찰수색견이 갑자기 멈추더니 나뭇가지와 부유물 등이 뒤섞인 곳을 향해 “컹컹, 컹컹컹~” 계속 짓기 시작했다.
동행한 경찰관은 “견(犬)이 한곳을 주시한 채 주변을 맴돌고 계속 짖길래 바로 이상 징후를 느꼈다”며 “처음엔 작은 널빤지 같은 목재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의 신체 일부(등 부분)였다”고 말했다.
동료 경찰관들과 경찰견이 제자리서 맴도는 곳을 파헤쳐보자 아니나 다를까 산사태와 폭우로 인해 지난 15일 실종됐던 강모(77·여)씨의 시신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산사태와 폭우 등으로 예천 수해피해 지역에서 군(軍)과 경찰 등 파견된 수색견은 30마리. 수색견 중에 실종자를 찾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숨진 강씨가 발견된 곳은 자택에서 1.5km 떨어진 평평한 지형이었다. 앞서 소방당국 등이 3차례에 걸쳐 500여 명이 동원돼 수색을 진행한 곳이다. 하지만 땅 속에 묻힌 실종자를 찾지 못하고 지나친 것을 경찰견이 단번에 발견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실종자 발견으로 수색 작업이 장기화 될 수 있다는 우려를 조금이나마 덜게 됐다”고 말했다.
실종자를 찾은 주인공은 전국을 무대로 활동 중인 강원경찰청 소속 경찰수색견이다. 보다 정확한 표현은 ‘과학수사체취증거견’이다. 이름은 ‘볼트’, 35kg 체중에 현재 3살 1개월 된 수컷이다. 서유럽 벨기에서 목축견으로 알려진 대형견 ‘벨지안 말리누아’ 품종인 볼트는 일반 셰퍼드 품종보다 몸집은 작지만 활동성이 뛰어나고 사람보다 1만배 이상 후각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기점으로 실종자에 대한 뚜렷한 성과가 없자 경북경찰청은 수색견 ‘볼트’를 강원경찰청에 요청했다. 지난 17일 오후 수마(水魔)가 할퀸 예천에 도착한 볼트는 곧바로 수색 현장에 투입됐다. 볼트가 하루 만에 실종자를 찾자 경찰관들은 “역시, 볼트”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경찰이 볼트에 대해 극찬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볼트는 지난해 11월 경찰청 과학수사체취증거 우수견 평가에서 전국 28마리 체취전문 경찰견 중 가장 우수한 후각 능력을 인정받았다. 볼트 덕분에 핸들러 강원경찰청 과학수사대 김한진(48) 경위는 ‘체취전문 베스트경찰’로 선정됐다.
‘볼트’라는 이름은 김 경위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볼트’에서 이름을 착안했다고 한다. 김 경위는 “영화 속 볼트가 할리우드 배우견(犬)으로, 자신이 가진 다양한 초능력을 이용해 주인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지금의 볼트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역할을 하라는 의미에서 이름지었다”고 말했다.
강원경찰청에 따르면 볼트는 지난해 7월 강원도 철원에서 지뢰폭발 사고로 숨진 포크레인 운전자를 발견한 데 이어 8월 강원도 홍천군 한 야산에서 실종자를 생존 상태에서 발견하는 등 2022년부터 최근까지 21건의 수색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1월 경기도 양주 채석장 붕괴로 3명이 매몰된 사고와 같은 해 12월 경기 파주 택시기사 살인 사건, 올 3월 강남 납치 살인 사건 등 국내 굵직한 사건에도 투입될 정도로 이제 경찰에선 국내 최고 냄새 전문 경찰견으로 대우하고 있다.
2005년 7월 임용된 김 경위는 볼트와 3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다. 수색이 없을 경우 볼트는 공무원 근무시간과 똑같이 훈련소에서 사람을 찾고 알리는 인지·통보 훈련을 받는다.
귀한 존재인 만큼 김 경위는 늘 볼트의 건강을 염려한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양평 용문산 실종자 수색 당시 볼트는 발바닥이 찢어져 수술하는 위기도 맞았다. 산세가 험한 곳을 수시로 수색하다보니 다리나 발바닥이 다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김 경위는 “볼트는 특수목적견이라서 훈련하거나 대상자를 발견했을 경우 이외 칭찬을 하지 않는다”며 “어쩌다가 제가 미소를 지으면 온몸을 기대고 이쁜 눈으로 쳐다보면서 애교도 잘 부린다. 볼트와 소통은 말보다 느낌과 표정으로 교감하면서 서로가 원하는 걸 파악하고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볼트가 가장 좋아하는 특식은 상어연골이다. 김 경위는 “이번 예천 실종자 수색이 마무리되면 공을 세운 볼트에게 상어연골을 잔뜩 사줄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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