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위 또 다른 사령탑, 색깔도 가지각색
'포인트가드', 팀 스포츠 농구에서 가장 '우리'라는 단어와 가깝게 있는 포지션이다. 다른 포지션같은 경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어느 정도 역할만 착실히 해주면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슈터는 슛을 잘쏘고 빅맨은 리바운드 등 골밑플레이만 튼실하게 해주더라도 박수를 받을수 있다. 말 그대로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다.
예외도 있다. 포인트가드는 나만 잘해서는 곤란하다. 나로인해 동료들까지 잘했을 때 좋은 1번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와 동료가 함께 빛나는게 최고겠지만 다소 내가 가리더라도 그로인해 다른 선수들이 펄펄날면 알짜라는 평가가 따라붙기도 한다. '코트위 또 다른 사령탑'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포인트가드는 그 어떤 포지션보다도 많은 역할이 요구된다.
야전사령관으로 불리는 자리답게 넓게 코트를 바라보며 전체적인 흐름을 체크할 수 있어야하며 상황에 맞는 동선 지시도 필수다. 어디 그뿐인가. 기본 세팅이 끝난 후에는 다양한 패싱플레이를 통해 각자의 플레이를 매끄럽게 해주는 등 이른바 떠먹여줄 수도 있어야 한다. 거기에 동료들이 막히면 내외곽에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공격력도 겸비할 필요가 있다. ‘BQ와 리더십을 모두 갖춰야되는 자리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포인트가드가 갖춰야될 능력이나 해야할 일은 끝이 없다. 포인트가드는 그 어떤 포지션보다도 안정적인 볼핸들링 능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다른 기술이 좋아도 수비에 막혀 공을 빼앗기거나 자신이 해야될 플레이에 영향을 받으면 팀도 덩달아 흔들릴 수 있기때문이다. 앞서 언급한것처럼 다른 선수들은 수비에 막히면 주로 힘든 것은 '나'이지만 포인트가드는 나는 물론 '우리'가 모두 괴롭게 된다. 종갓집 맏며느리가 그렇듯 해도해도 일거리가 계속 쏟아져나오는 자리가 바로 1번이다.
물론 최근에는 트랜드가 달라지기는 했다. 20여년 전까지만해도 포인트가드 위주로 움직였던 시대인지라 대부분 팀공격의 시작은 1번에서부터 이루어졌다. 지금은 확연히 다르다. 여전히 팀 전체를 지휘하는 포인트가드는 존재하지만 상당수 팀은 기존 틀에서 벗어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리딩, 패싱게임을 다른 포지션에서 분담하는 상황이 늘고있는 모습이다. 포인트 포워드, 컨트롤 타워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NBA 신흥명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같은 경우 단신 파워포워드 드레이먼드 그린이 팀 리딩을 끌어나가는 비중이 주전 1번 스테판 커리 못지않다. 커리가 경기를 조율할 때도 링커로서 패싱게임의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그로인해 커리는 자신의 장점인 3점슛을 마음껏 쏘며 포인트가드이자 주 공격수 역할까지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전략이 성공하자 비슷하게 따라하는 팀도 늘고 있다. 올시즌 NBA 우승팀 덴버 너게츠는 아예 센터(니콜라 요키치)가 포인트가드 역할을 하고 1번 자말 머레이는 공격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국내 리그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허재, 김민구(이상 은퇴), 최준용 등처럼 정통 포인트가드 뺨치는 패싱센스를 갖춘 슈팅가드나 스윙맨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는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다. ‘듀얼가드의 시대’라는 평가 속에는 주전급으로 쓸만한 퓨어 포인트가드가 없는 이유도 크다. ‘이대신 잇몸의 개념’으로 듀얼가드가 게임을 이끌어나가는 방식이 발전했다.
양동근, 김선형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본래 포지션이 포인트가드도 아니었을뿐더러 게임조율, 패싱센스 등에서 최상급 플레이어는 아니다. 하지만 포지션대비 신체조건, 운동능력 등이 우수하고 공격력까지 출중한지라 자신의 장점을 살려 1번으로 연착륙한 케이스다. 모든 듀얼가드가 이들만같다면 퓨어 1번이 아쉬울 이유는 없다.
그러나 과거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등 특급 정통 포인트가드들이 그렇듯 듀얼, 퓨어를 떠나 양동근, 김선형 급의 선수는 10년에 한두명 나오기도 쉽지않다. 결국 정해진 풀안에서 야전사령관을 선택해야하는데 대부분이 듀얼가드인지라 현재의 트랜드가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듀얼가드를 기가막히게 활용하는 대표적 지도자로는 과거 유재학, 문경은이 있었고 현재는 소노 김승기 감독이 첫손에 꼽힌다.
김감독에 대해 농구 블로거 윤순용(43‧서울)씨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대부분 팀들은 1번 포지션에 적지않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원맨 리딩이 가능한 주전급 정통포인트가드는 굉장히 드문데 반해 각종 전략전술은 예전보다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승기 감독은 가지고있는 해당 전력에서 각 선수의 장점을 뽑아내는데 최고의 전문가같다. KGC 시절 이재도, 변준형도 그렇고 현재의 이정현까지…, 선택지를 간소화해서 공격능력을 가진 성향의 선수를 1번으로 잘 활용한다. 부족한 것은 다른 포지션에서 각 선수의 잘하는 플레이를 이용하면서 단점을 메운다. 스포츠 경기를 보다보면 쓸놈쓸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김감독은 쓸놈을 만드는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는 말로 장점을 설명했다.
지난 시즌에 가장 빛난 1번은 단연 SK 베테랑 김선형과 소노(전 데이원)의 젊은피 이정현이었다. 둘다 탁월한 공격능력을 앞세워 상대 수비에 부담을 안겨줬고 이를 활용해 패싱플레이까지 원활하게 펼쳤다는 공통점이 있다. 현대농구에서 왜 포인트가드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공격력을 요구하는지 두선수가 여실히 보여줬다.
정규시즌 MVP 김선형은 적지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위력적인 돌파와 전가의 보도 플로터의 위력이 여전했던지라 자밀 워니와 함께 정신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쇼타임 농구의 중심에 섰다. 거기에 베테랑 특유의 노련미를 살려 빈자리 구석구석에 날카로운 어시스트를 꽂아주었다.
2년차 이정현은 플레이오프에서 자신의 진가를 제대로 보여줬다. 탄탄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를 앞세워 매치업 상대를 돌파와 페이스업으로 압살하고 거리가 멀어졌다 싶으면 여지없이 안정적인 슈팅을 적중시켰다. 자신에게 수비가 몰릴 경우 패스를 통해 동료들을 살려주었는데, 특히 외국인선수 디드릭 로슨과의 호흡이 일품이었다. 6강, 4강전을 통해 한단계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는지라 탑 클래스 슈터 전성현과의 시너지효과가 기대되고 있다.
김선형과 이정현이 건재한 가운데 다음 시즌에는 외국인선수급 공격력을 갖췄다고 평가받고있는 KT 허훈까지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다. 지난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가드 변준형과 '춘삼이'라는 별명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론제이 아바리엔토스를 각각 군입대와 계약해지로 인해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지만 아시아쿼터제 최고의 히트작으로 불리는 이선 알바노가 건재한 만큼 다양한 스타일의 1번대결이 더욱 볼만해졌다는 평가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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