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온 연주자들 “K-클래식은 이것이 특별해”
18일 저녁 서울 롯데콘서트홀. ‘임윤찬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진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국립심포니가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그런데 단원들이 젊고 낯설다. ‘국립심포니 국제아카데미’에 참여한 19개국 연주자들로 구성된 ‘다국적 오케스트라’다. 단원 52명 가운데 절반인 26명이 국외 연주자들이었다. 임윤찬과 함께 미국 뉴잉글랜드 음악원(보스턴)으로 향하는 손민수의 ‘고별 연주’는 ‘케이(K) 클래식’의 현장을 찾은 연주자들이 참여한 특별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던 것.
지난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엔(N)스튜디오에서 아카데미에 참여한 국외 연주자들 가운데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 출신 연주자 3명을 만났다. 이들은 젊은 청중이 유독 많은 한국의 공연장 분위기에 놀라워했다. 피아니스트 윤홍천의 ‘팬 사인회’에 긴 줄이 늘어서는 광경도 낯설어했다. 음악에 대한 접근법 자체가 유럽과 다른 것 같다고 했다. 3명 모두 한국 클래식 음악의 특성을 ‘탄탄한 기초’에서 찾았다.
“유럽에서 클래식은 엘리트 음악이란 인식이 강해요. 젊은 세대는 관심이 적어서 청중도 대부분 노년층이죠.” 이번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은 네덜란드 태생 바이올린 연주자 신 시한(29)은 “한국 음악가들은 이미 특별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했다. 주요 공연장과 악단, 콩쿠르에서 한국 연주자들의 활약이 눈부시다는 거였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8)와 함께 공부했다. “유럽에서 만난 한국 출신 연주자들은 한결같이 기초가 탄탄했어요. 한국은 정교한 교육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는 것 같더군요.” 그는 “어머니도 한국인이어서 그런지 뭐든 대충 하는 걸 용납하지 않았고, 바이올린 연습을 끝마쳐야 놀 수 있었다”며 웃었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저소득층 청소년들을 위한 무료 음악 교육 프로그램) 출신 첼리스트 앙헬 미구엘(30)은 상반된 경험을 전했다. “제발 연습 좀 그만하고 놀면서 쉬라”는 게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은 얘기였다고. 13살 때 엘 시스테마 출신 세계적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도 연주했다. 그는 “베네수엘라에선 악기 소리만 낼 줄 알면 곧바로 오케스트라에 내던져지는데 한국에선 기초를 철저하게 닦아야 단원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찾아낸 한국 음악 교육의 특성은 ‘모든 게 질서정연하고, 철두철미하게 목표를 향해 매진하도록 하는 정교한 시스템’이었다. “엘 시스테마는 뭔가를 배우면 다른 아이들과 나눠야 한다고 가르쳐요. 그래서 그곳에선 많은 아이가 악기를 다룰 줄 알지요.”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음악을 즐기면서 나누는 접근법은 우리에게 조금 부족한 부분이다.
인도네시아 명문 반둥대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영국 왕립국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는 아르야 푸갈라(33)는 “케이 클래식이란 용어는 생소하다”면서도 “한국 음악가들이 국제 콩쿠르를 휩쓰는 현상은 정말 궁금하다”고 했다. “한국 연주자들은 기초가 무척 탄탄해요. 그러다 보니 어떤 문제나 새로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대처하고 해결해나가는 능력이 좋은 것 같아요.” 그가 찾은 ‘케이 클래식’의 비결 역시 ‘완벽한 기초 훈련’이었다.
손민수는 이번 공연을 위해 이들과 3차례 리허설을 진행했다. 그는 “매번 완전히 다른 오케스트라와 만나는 느낌이 들 만큼 서로의 음악에 즉각 반응하고 화합하는 순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한국 음악가들은 악기를 일찍 시작해요. 어려서부터 엄격한 수련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서 흔들리지 않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꽃피워 나갑니다. 거기에 부모님의 헌신적 사랑과 희생, 뛰어난 선생님들의 가르침이 더해지지요.” 임윤찬을 키워낸 스승 손민수가 말하는 ‘케이 클래식’의 비밀이다.
한국 연주자들이 명성 있는 국제 콩쿠르에서 잇달아 우승하면서 나온 ‘케이 클래식’이란 용어가 탄생했지만 논란의 여지는 있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도 “콩쿠르 강국은 맞아도 아직 클래식 강국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다만, 한국을 찾은 국외 연주자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한국의 클래식 음악이 크게 도약했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윤 대통령, 북 초토화 가능 미 핵잠수함 올라 “정말 든든”
- [단독] ‘미국=우리 편’ 한동훈 해석과 딴판…엘리엇 판정문엔
- 빗물에 잠기는 지하차도 3분…“차 창문 두드려준 분 덕에 탈출”
- 선관위 사무총장에 ‘윤 대통령 대학 동기’ 내정…중립성은?
- 지하차도 수사본부장 전격 교체…충북청 신고 대처 미흡 이유
- 오송 참사 1시간 뒤 괴산행…납득 어려운 김영환 지사 행보
- 노숙인과 옷 바꿔 입고 오더니…100명 살리고 눈감은 의인
- ‘예천 실종자 수색’ 해병대 일병 실종…급류에 휩쓸려
- 240원 오른 시급…버스요금 300원 오르는 만큼도 안 되네
- 터전 찾기도 어려운 장애인…“이사 잦다”며 구속하겠다는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