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마셔도 OK" 칠레 '견우' 와인의 자신감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부드러운 오크 캐릭터 일품
유일한 단점 꼽자면 긴 이름
올드 빈티지 '카·쇼'의 전형
풍미·숙성·밸런스 '삼박자'
독수리별자리 '견우성' 뜻
1865 와인과 같은 생산자
칠레 와인의 미래는 '숙성 잠재력'이 있는 와인을 만들 수 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 시장에서는 그렇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와인 '몬테스'와 '1865'가 모두 칠레 와인일 정도로 한국 시장에서 칠레 와인의 입지는 탄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 와인업계에서 들립니다. 코로나19를 거치며 한국의 와인 소비는 1인당 0.8병에서 2.4병으로 3배나 성장했습니다. 동시에 와인 소비자들의 기호도 데일리 와인이라 불리는 '테이블 와인'에서 고가의 '프리미엄 와인'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가성비 위주 칠레 와인에 대한 국내 소비자 선호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칠레 와인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 한국뿐 아니라 세계 와인 소비 취향이 '고급화'로 이동하고 있어 프리미엄 와인을 생산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이달 초 서울에서 칠레와인협회(Wines of Chile) 주최로 열린 '92+ 칠레 와인'은 그런 점에서 무척 흥미로운 자리였습니다. 각종 평가에서 92점 이상을 받은 칠레의 대표 와인들이 대거 참여했습니다. 이 자리에서도 칠레 와인의 '숙성 잠재력'에 대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마스터 클래스를 진행한 박수진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은 예전에 1980년대 후반 빈티지까지 칠레의 올드 빈티지 와인을 마셔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칠레나 나파밸리 카베르네 소비뇽의 열렬한 팬은 아니다"면서도 "1980년대 생산된 보르도 와인이 간신히 연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칠레 등 뉴월드 와인들은 처음에는 과하다 싶었던 과일 풍미가 숙성되면서 균형을 찾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인상적이었던 와인들을 소개합니다.
비냐 산 페드로, 알타이르 2020
칠레를 비롯한 신대륙 와인 생산자들은 '숙성'의 시간을 거치지 않고 지금 마시기에 딱 좋은 와인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납니다.
산 페드로(San Pedro)에서 만든 알타이르(Altair) 2020년은 "2020년 빈티지가 벌써 이렇게 부드러워질 수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드러운 숙성감이 뛰어났습니다.
산 페드로는 1865년에 설립됐습니다. 국내 잘 알려진 1865와 같은 회사 와인이지만 알타이르 와인은 프리미엄 라인인 'GVSP(Grandes Vinos de San Pedro)'에 속해 있습니다. 1865 와인은 한국에서 "18홀 65타 치세요"라는 골프 마케팅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알타이르'란 이름이 입에 붙지 않는다면 '견우와 직녀'의 "견우 와인 주세요"라고 기억해도 좋을 듯합니다. 별자리에서 독수리자리의 알타이르(Altair)가 '견우성'이고 거문고자리의 베가(Vega)는 '직녀성'입니다. 칠레에서 '견우와 직녀' 이야기를 알았다면 '베가'라는 이름으로 화이트 와인을 만들었어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타이르 2020년은 지금 마시기엔 너무나도 좋은 와인인데 '숙성 잠재력'이 있을까요? 산 페드로 GVSP 와인의 양조 책임자 가브리엘 무스타키스는 "10년 뒤에 마셔도 자신 있다"고 말했습니다.
비냐 쿠지노 마쿨, 로타 2017
쿠지노 마쿨(Cousino Macul)에서 만든 로타(Lota·사진) 2017년은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서 가장 인상적인 와인이었습니다. '로타'는 칠레 마이포 밸리에서 카베르네 소비뇽 65%, 메를로 35%로 만들어진 와인입니다. 칠레 레드와인이 보여줄 수 있는 풀보디의 강인함과 함께 프리미엄 와인이 갖춰야 할 '복합미'가 뛰어났습니다. 2017년 빈티지로 '병' 숙성을 거치면서 부드러움이 잘 진행됐고 밸런스도 좋았습니다. 와인 애호가들이 기대하는 올드 빈티지 카베르네 소비뇽의 전형적인 맛이 아닐까 싶습니다.
비냐 콘차 이 토로, MDCC 헤리티지 2020년
콘차 이 토로(Concha y Toro)에서 만든 마르케스 데 카사 콘차(MDCC) 헤리티지 2020년은 카베르네 소비뇽 84%, 카베르네 프랑 12%, 프티 베르도 4%를 섞었습니다. 농축미가 뛰어나고 흠잡을 데 없이 부드러운 오크 캐릭터가 일품입니다. 이탈리아 와인만큼이나 '긴' 와인 이름 때문에 소비자들이 기억하지 못할 것이란 점이 이 와인의 유일한 단점입니다.
다음은 '포도품종' 때문에 고른 와인들입니다. 포도품종 특성을 잘 살린 게 특징입니다.
몬테스, 몬테스 퍼플 앤젤 2020
카르미네르 포도품종 92%를 사용했습니다. 제임스 서클링으로부터 98점을 받은 몬테스의 '아이콘' 와인입니다. 또 다른 칠레 와인 '알타이르'처럼 2020년 빈티지에서 이런 숙성된 부드러움을 만들어낸다는 게 놀랍습니다.
에밀리아나 오가닉 빈야즈, 지 2018
자두, 블랙베리 등 쉬라 특유의 검은 과일의 강렬한 뒷맛이 일품입니다. 저는 쉬라 품종이나 유기농이나 바이오다이내믹 와인을 아주 선호하지는 않지만 이 와인은 산도와 잘 익은 타닌이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게 잘 잡혀 있었습니다. 제임스 서클링 98점을 받았습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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