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 찢어지고 물 공포증 이겨내고…김혜수의 '밀수' [HI★인터뷰]
처절함으로 연기한 해녀 춘자
부상 투혼으로 완성한 수중 액션
배우 김혜수가 돌아왔다. 물 공포증을 이겨내고 바다에 뛰어든 김혜수는 촬영 중 이마가 찢어지는 부상투혼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 '밀수'는 김혜수에게 유독 특별한 작품이 됐다.
1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한 카페에서 김혜수는 본지와 만나 영화 '밀수' 관련 이야기를 나눴다. 오는 26일 개봉되는 '밀수'는 바다에 던져진 밀수품을 건지며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 앞에 일생일대의 큰 판이 벌어지면서 휘말리는 해양범죄활극이다. 김혜수 염정아 조인성 박정민 등 다양한 색채의 연기자들이 이름을 올렸으며 '모가디슈' 이후 류승완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이다.
작품은 춘자와 해녀들의 일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김혜수는 이날 "'밀수'의 소재가 해녀인 만큼 해녀 역할을 맡은 이들의 연습이 필수다. 다들 워낙 준비를 많이 했지만 저는 '소년심판'과 일정이 겹쳐서 훈련을 못했다"고 말했다. 앞서 진행된 시사회에서 작품을 본 소감을 묻자 "다른 영화 보듯 그냥 봤다. 다행히 재밌었다"고 웃으면서 답했다. 그는 "제가 나오지 않은 장면에선 크게 웃었다. 촬영 당시가 생각나더라. 그때 마주쳤던 눈, 냄새, 촬영하는 공간 속 들리는 마이크 소리가 떠올랐다"고 말하면서 작품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앞서 김혜수는 영화 '도둑들' 촬영 도중 공황장애를 겪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도둑들'에서 차가 물에 잠기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자신의 이상 증세를 알게 됐다는 김혜수는 "그때는 공황인 줄도 몰랐을 정도로 처음 겪었다. 죽을 것처럼 숨이 안 쉬어졌고 몸이 마비가 됐다. 큰 일이 날 일이 없었는데 마음이 이상했다. 몇 컷을 촬영하다가 그만뒀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촬영에 임하면서 스스로의 몸과 상태를 돌아보고 공황이라는 것을 알게 됐단다. 그렇기 때문에 김혜수에게 '밀수'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역할이 해녀인 만큼 수중 촬영이 필수였다. 배우 본인도 우려가 컸지만 이미 촬영은 시작됐고 극복해야 하는 난관이었다. "준비를 제대로 못해서 걱정이 됐어요. 이미 촬영은 한 달 전부터 시작했는데 내가 안 하면 우리 영화 어떻게 되지 하는 고민이 컸어요. 한 명씩 입수해서 연습한 기량을 테스트하는 시간에 다른 배우들을 보니 뭔가 풀리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나중에는 평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죠. 정말 예전처럼 물이 편하고 자유로웠습니다."
약 6m 가량의 수중 세트에서 김혜수는 이전과 달리 편안함을 느꼈다. "물을 '꿀떡꿀떡' 많이 먹었다"고 덧붙이기도 했지만 촬영 현장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김혜수가 '밀수'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70년대, 밀수, 해녀라는 요소가 흥미롭게 다가왔다. 영화를 시작할 땐 배우로서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흥미로 시작한 이 작업은 김혜수에게 뜻하지 않은 감정들을 안겼다. 매 작품마다 팀원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했던 김혜수는 '밀수' 현장에서 협업과 팀원의 정체성을 찾았다. 이러한 감정들은 진한 파동이 돼 촬영의 시작과 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밀수'에 임한 배우로서의 만족감도 컸다. "정말 좋은 멤버들이 모였어요. 늘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배우가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밀수' 현장에서는 일체감을 여러 번 느꼈어요. 연기, 영화적 성과와 별개로 좋았던 점입니다."
그가 맡은 춘자는 컬러와 화려한 패턴으로 캐릭터성을 설명하는 인물이다. 춘자를 완성하기 위해 김혜수는 70년대 카탈로그 등 다양한 자료를 구해 연구했고 지금의 춘자가 완성됐단다. 이 과정에서 김혜수는 춘자를 외로운 캐릭터로 바라봤다. 밝은 에너지가 있지만 내면에는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정서가 기반이 됐다. 어촌의 금수저였던 진숙은 진중한 성격으로 전체의 삶을 살피는 리더에 가깝다. 춘자에게 진숙이 더욱 특별한 까닭이다. 유일하게 춘자에게 안락함을 안기는 존재이자 관계라고 바라봤다. 초반 춘자의 태생적인 불안정, 외로움을 티내지 않게 더욱 활발하게 움직인다. 타인에게 삶을 의탁하면서도 삶을 위장한다. 공포라는 감정을 느끼면서 위기를 모면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춘자는 발버둥을 친다. 김혜수는 그 순간을 '처절함'이라고 표현했다.
기존 시나리오는 지금의 분량보다 더 길었다는 후문이다. 김혜수와 염정아는 대본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던 중 류 감독에게 말했다. 시나리오 수정에 대한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고 한걸음에 달려와 시나리오를 수정했다는 비하인드를 들을 수 있었다.
여성 중심 서사에 대한 예비 관객들의 궁금증도 있다. 김혜수는 "여성 영화로 소개됐지만 대본에서 어떤 캐릭터의 앙상블이라고 생각했다. 각자의 영향도 중요하지만 서로의 시너지가 기대됐다. 그 부분이 제겐 중요하다. 여성 투톱 영화로 한정하고 싶지 않다"고 연기관을 드러냈다. 특히 액션을 찍는 도중 이마 정중앙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안전요원들이 있었지만 순간의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그는 "참 조심했는데 사고가 났다. 한편으로는 다른 곳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물속에서 쇳덩이랑 부딪혔다. 저는 뇌진탕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충격이었다"고 언급했다.
류승완 감독의 연출은 어땠을까. 김혜수는 류승완 감독의 장점에 대해 "캐릭터의 생동감, 입체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이 배우와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갖고 있는 연출가"라고 설명했다. 대본에 없었지만 연출진은 수없이 편집본을 돌려가면서 장면을 발굴했다.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닌 거듭된 회의와 고민에서 비롯된 신들이다.
이어 "제가 최동훈 감독과 오래 작업을 했다. '타짜'를 작업했을 때 개봉 안 하고 촬영만 하고 싶었다고 느꼈다. 하지만 현장이 행복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밀수'는 행복했다. 감독의 역량, 제작 환경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배우들과의 일체감, 전체적으로 해녀 팀의 일체감, 염정아와 우리 둘만 알 수 있는 찰나의 집중과 신뢰가 있었다"고 말했다. 호흡을 확보하고 사인을 주고 연기를 시작하는 과정에서 상대 배우와 깊은 유대를 느끼고 서로를 향한 신뢰를 알게 된 것이다.
올해로 데뷔 37년차이지만 김혜수의 연기에 대한 고민은 지속되고 있다. 모니터링을 보며 스스로 반성할 때도 있다고 말한 김혜수는 "촬영장에서 한계를 매순간 느낀다. 누가 나를 괴롭히거나 못마땅하지 않는데도 현장의 고통스러움이 있다. 내가 나의 민낯을 보는 것은 힘들다. 눈물이 나지만 또 해낸다. 매 순간 매초 교차한다"고 고백했다.
이러한 고민은 누가 해결해 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극복 중이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는 나 자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모든 배우가 장단점이 있다. 늘 오랫동안 고민하고 노력하지만 극복이 안 되는 단점도 있다. 인정을 하자. 나는 이런 배우다. 자조적인 것이 아니라 나를 인정하며 방법을 찾자고 하지만 마음먹는 대로 안 된다. (이번 현장에서는)압도하는 일체감이 저를 행복하게 했다"고 밝혔다. 또 현장에 있는 많은 후배들은 그에게 자극이 됐다. 박정민의 호연을 두고 "잘하는 배우가 있으면 흥분되고 너무 신이 난다. 어떻게 저렇게 하지. 내가 저때 어땠지 생각도 난다.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우다빈 기자 ekqls064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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