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엇에 1300억 지급’ 판정 취소소송 나선 정부…다야니 사건과 어떻게 다른가

김종용 기자 2023. 7. 19.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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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야니家 판정 취소소송은 韓 정부 패소
“한국자산관리공사는 한국 정부 국가기관”
엘리엇 사건서도 국민연금의 ‘국가기관’ 여부가 관건
삼성과 엘리엇. /연합뉴스

우리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대한 불복 절차에 착수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엘리엇 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브리핑’을 열고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한-미 FTA를 위반했기 때문에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와 지연이자를 지급해야 한다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정이 나온 지 28일 만이다. PCA가 지급을 명한 금액은 엘리엇이 청구한 손해배상금 7억7000만달러(약 9917억원)의 7% 수준이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관할 위반’을 주장하고 나섰다. 국제투자분쟁 사건에서의 관할은 일반 소송에서 사용하는 관할과는 다른 의미로, ‘재판권’이라는 의미에 가깝다. 정부와 엘리엇 간의 분쟁이 중재판정부의 ‘재판 대상’이 아님에도 판정을 내린 것은 부당하다는 게 법무부의 주장이다.

이날 한 장관은 취소 소송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이란 다야니가(家) 사건과 엘리엇 분쟁은 다르다고 밝혔다. 다야니 사건은 이란 다야니 일가가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를 추진하던 과정에서 불거진 분쟁이다. 대우일렉트로닉스 채권단이 다야니의 조건 불이행을 이유로 계약금 578억원을 몰수하자, 다야니가 채권단이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ISDS를 신청했고 그 결과 우리 정부가 투자자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판정이 나온 바 있다. 이후 우리 정부는 이번 엘리엇 사건과 마찬가지로 영국고등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2019년 말 패소 판결을 받았다. 엘리엇 사건과 다야니 사건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다르며, 정부는 왜 승산이 있다고 보는 것일까.

◇①국민연금을 ‘사실상의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는가

이번 사건의 쟁점은 관할 인정 여부다. 한-미 FTA 규정상 ISDS 관할이 인정되려면 ▲정부가 채택·유지한 조치(당국의 조치)일 것 ▲투자자의 투자와 관련성이 있을 것 ▲조치의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 등 일정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영국고등법원에서 다툴 첫 번째 쟁점은 국민연금공단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있는지다.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으로 인정된다면 한국 정부가 국제투자분쟁의 당사자가 되고,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책임이 정부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미 FTA 규정상 ISDS의 관할이 된다.

법무부는 중재판정부가 국민연금에 적용한 ‘사실상의 국가기관’이라는 개념이 한-미 FTA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볼 수 없으며, 따라서 ISDS의 관할도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이란 다야니가(家) 사건에서도 ISDS의 관할을 따졌다. 그 당시엔 ▲D&A(다야니가 싱가포르에 세운 특수목적회사)의 ‘투자’가 있었는지 ▲다야니가 투자자인지 ▲캠코의 행위가 한국에 귀속될 수 있는지 ▲캠코 행위의 국가 귀속 여부에 관계없이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호협정(BIT)을 직접 위반했는지 등이 쟁점이 됐다.

그 중 엘리엇 사건과의 공통적 쟁점은 ‘한국 정부에 대한 귀속 여부’다. 그 당시 한국 정부는 분쟁이 다야니와 캠코 사이에 발생한 것일 뿐 캠코의 행위는 한국에 귀속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고, 한-이란 BIT에 따른 국제투자분쟁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의 입장이었다. 이번 엘리엇 사건에서 주장한 내용과 거의 일치한다.

당시 영국고등법원은 “한국 정부가 분쟁의 당사자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분쟁(dispute)’이라는 개념은 특정 행위가 투자유치국에 귀속되는지에 관한 분쟁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또 한-이란 BIT 제12조1항을 근거로 들어 다야니의 손을 들어줬다. 이 조항에는 ‘투자자와 투자유치국 간에 투자와 관련해 직접 발생하는 모든 법적 분쟁(any legal dispute)’이라는 문구가 있다. 분쟁 해결 대상의 범위를 넓게 본다면 캠코의 행위도 한국에 귀속될 수 있다는 게 당시 영국고등법원의 판단이었다.

법무부. /뉴스1

◇②국민연금의 의결 행위가 ‘상업적 지분권’을 행사한 것인가

두 번째 쟁점은 당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엘리엇에 대한 조치, 즉 엘리엇의 투자에 관련된 조치인지다. 우리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이다. 즉, 국민연금이 엘리엇의 투자를 제한하고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다야니 사건과는 관련이 없는 쟁점으로, ①번 쟁점과 상호 보완적인 관계다. ①번 주장처럼 국민연금이 국가기관이 아닐 때 ②번 주장이 성립할 수 있고, ②번 주장이 ①번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법무부는 국민연금이 단지 삼성물산의 소수주주로서 투자 목적(상업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했을 뿐, 그 행위로 인해 다른 소수주주인 엘리엇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건 상법의 대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한다.

법무부가 말하는 상법의 대원칙은 “소수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주주에게 어떠한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만약 이런 상업적 지분권 행사를 ISDS의 대상으로 인정한다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국가의 연기금 및 국부펀드도 ISDS의 관할이 될 수 있다는 게 우리 정부의 주장이다.

이는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적 의결권을 행사했다”는 한국 법원의 판단과도 일맥상통한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국내 법원에 제기한 무효 소송과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우리 법원은 ‘국민연금이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한 바 있다.

다만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따른 의결권 행사를 단순히 ‘상업적 의결권’으로 보긴 어렵다는 반론도 나온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주주총회를 앞두고 합병 안건에 찬성 표를 던지도록 국민연금(지분 11.21% 보유)에 압력을 가한 혐의로 작년 4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2년6개월을 선고 받았다. 실제로 엘리엇 사건 중재판정부도 이 확정 판결을 근거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정부의 압박에 의한 것(당국의 조치)으로 본 셈이다.

강대섭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상사법학회 2015년 동계 학술대회 발표에서 “주주가 주주권에 기한 권리를 행사할 때에는 주주 자신의 이익을 고려하면 되고 회사의 이익이나 다른 주주의 이익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주주의 권리행사가 회사 경영진이나 다른 주주의 부당한 영향을 받고 행사되는 것은 회사 운영상 바람직하지 못하고, 회사 또는 다른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금지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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