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불황을 수출하는 美 … 침체 없는 경제 꿈꾸나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2023. 7. 1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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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160년 비즈니스 사이클 분석

◆ 매경 포커스 ◆

날씨만큼 변덕스러운 것이 경제다. 어떤 날은 해가 쨍쨍 내리쬐는데 어떤 날은 흐리고 비가 오는 것처럼, 어느 날은 물건이 날개 돋친 듯이 팔렸는데 어느 날은 재고가 쌓여가기만 한다. 어제는 일할 사람을 찾지 못해 난리였는데 오늘은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나가라고 한다. 경제 부침에 사람들의 희로애락도 바뀐다. 경제는 호황을 거쳐 정점에 다다르면 하강기를 겪고 하강이 계속되면 바닥에 도달한 후 다시 상승하는 시기를 거쳐 정점에 도달한다. 반복되는 이 과정을 '비즈니스 사이클'이라고 부른다. 이 사이클에 따라 소득과 고용이 출렁거리고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오르내린다. 300년의 자본주의 역사상 예외는 없었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비즈니스 사이클을 설명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정부 정책도 복잡한 것 같지만 최종 목적은 호황과 불황 간 경기의 진폭을 줄이는 것이다. 21세기 세계 경제는 어떤 흐름을 보일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미국이다. 전미경제연구소(NBER)가 1854년부터 2020년까지 166년간 생산, 고용, 소비 등 각종 지표들을 활용해 미국의 경기 순환 과정을 분석했다. 그들이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미국은 이 기간 중 총 33번의 경기순환주기를 겪었다. 경기가 정점에서 출발해 하강한 후 저점을 형성하고 다시 상승기에 돌입해 정점까지 오는 기간이 한 주기다. 정점에서 저점까지 오는 기간을 수축기, 저점에서 정점까지 도달하는 기간이 확장기다. 미국의 경우 하나의 주기가 형성되는 기간은 평균 5년(59개월) 안팎이다. 순환주기가 가장 짧았던 적은 대공황 전인 1920년대로 17개월, 주기가 가장 길었던 때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부터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기간인 146개월이다.

특징적인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경제의 수축기는 짧아지고 확장기는 길어졌다는 점이다. 1854년부터 1919년까지 초기 65년 동안 경기 수축기는 21.6개월, 확장기는 26.6개월로 파악됐다. 수축과 확장의 기간이 엇비슷했다. 1919년부터 1945년까지 근 30년간은 수축기가 18.2개월, 확장기가 35개월이었다. 수축기는 이전보다 3개월 정도 줄어든 반면 확장기는 9개월가량 늘었다. 2차 대전 후인 1945년부터의 변화는 훨씬 극적이다. 1945년부터 2020년까지 75년간 수축기는 평균 10.3개월, 확장기는 64.2개월이다. 확장기가 수축기의 6배가 넘는다.

특히 코로나19로 극심한 경기침체가 우려됐던 기간 중 미국 경제의 수축기는 단 2개월(2020년 2~4월)에 불과했다. 이후 바로 확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미국의 경우 경기 수축기는 극단적으로 줄어들고 확장기는 대폭 늘어나는 경제로 변해가고 있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미국은 자본주의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불황'과 '침체'로부터 탈피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다른 나라의 경기순환 과정은 미국과 사뭇 다르다. 일본은 1980년대 말 이후 30여 년간 장기 침체 국면을 겪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장기 불황을 겪으면서도 그 안에서 확장과 수축기를 반복했다.

일본 내각부 통계에 따르면 일본 경제는 1951년부터 2020년까지 70년간 총 16번의 경기순환을 거쳤다. 이 중 확장기는 평균 38.5개월, 수축기는 평균 16.3개월로 파악됐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유로존의 경우 2000년 이후 경기 확장기는 평균 39개월, 수축기는 27개월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는 1972년부터 통계청이 경기순환주기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이때부터 2020년까지의 순환주기를 살펴보면 확장기는 평균 33개월, 수축기는 20개월이다. 한국·유럽·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경기 하강 기간은 훨씬 짧고 상승 기간은 훨씬 길다. 미국과 다른 나라 간 비즈니스 사이클의 '디커플링'이 본격화하고 있는 것. 각국이 경기 하강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면서 갖은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지만 실제 성과는 미국에 훨씬 못 미친다. 무슨 비결이 있는 걸까.

미국의 비즈니스 사이클이 이상적인 방향으로 바뀐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꼽힌다. 먼저 산업구조의 변화다. 미국 상무부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에서 각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부가가치 기준)은 2차 대전 후 극적으로 바뀐다.

1947년에는 미국 GDP에서 민간 제조업의 비중이 39.3%에 달했으나 2021년에는 이 비중이 17.1%로 22.2%포인트나 줄었다. 반면 민간 서비스업 비중은 47.2%에서 70.9%로 23.7%포인트 급상승했다. 서비스업 중 금융·보험·부동산업 비중이 10.3%에서 21%로 크게 늘었고 정보기술 분야는 과거 존재감이 없었지만 2021년에는 GDP의 7.6%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산업으로 부상했다.

제조업 중심국가에서 서비스업 중심국가로 탈바꿈한 것이다. 제조업은 서비스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생산과 소비 기간이 길고 환경 변화에 재빨리 적응하기도 어렵다. 미국은 서비스업 비중이 증가하면서 침체의 기간도 줄일 수 있었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지배력이 확대되면서 정책 효과가 배가된 것도 원인이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경제 호황이 길면 불황도 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미국은 긴 호황을 거쳐 불황이 찾아오면 다른 나라가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꺼내들었다. 미국 경제는 1960년대 9년에 걸친 확장기를 거친 후 1970년부터 본격적인 수축기에 접어들었다.

당시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자 닉슨 정부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줬던 각국과의 약속을 깼다. 그러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페트로 달러' 협정을 맺었다. 미국은 이를 통해 달러 가치의 급락을 막았고 이후 경제는 불황에서 빠져나왔다. 2001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7년에 걸친 경기 확장 국면을 거치면서 미국 경제에 거품이 형성됐다. 이 거품이 꺼지면서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다. 이때 미국은 제로금리와 양적완화(QE)라는 또 다른 파격적인 정책을 내놓으면서 경제를 살렸다. 2020년 2월 코로나19로 경기가 급강하하자 이번엔 '무제한 양적완화' 카드를 꺼냈다. 미국 경제는 이때 2개월이란 짧은 하강 국면을 겪은 후 곧바로 상승하는 'V자 반등'을 만들어냈다.

미국만 유독 경기 확장 국면이 장기화하는 비즈니스 사이클을 만들어내는 것은 미국의 경제 지배력이 확대되고 기축통화인 달러의 힘이 강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다른 나라들의 참여와 희생이 따른다. 개발도상국에서 저임금 노동에 기반한 제조업이 활성화하면서 미국은 제조업을 아웃소싱하고 금융과 정보기술 등 고부가가치를 만드는 서비스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미국의 양적완화를 통해 무제한 돈을 풀었지만 미국 내에서 급속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은 것은 세계 각국이 외환보유액 형태로 달러를 쌓아놓으면서 달러에 대한 수요를 지속적으로 늘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은 이 같은 정책으로 인플레이션과 불황에 대한 부담을 다른 나라로 전이하면서 경기 확장 국면을 늘려갔다. 반면 다른 나라들은 달러가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빠지면서 외환·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더 커지는 부담을 안게 됐다. 일부 개발도상국은 달러의 움직임에 따라 국가부도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 같은 불균형은 21세기 세계 경제의 또 다른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경기 흐름을 보면 미래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 경제는 2020년 4월부터 진행된 확장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2022년 3월부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지만 통화 긴축에 따른 경기침체 움직임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질GDP 증가율은 전기 대비 연율 기준으로 2%를 기록했고 2분기에도 1.5% 정도의 성장률이 예상된다. 6월 실업률은 3.6%로 완전고용 수준에 근접해 있다. 산업생산과 소매매출 등의 지표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아직 침체를 예고하는 지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미국 경제의 평균 확장 국면이 64개월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2025년 상반기까지 확장 국면이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가능하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계속 금리를 올리고 있는 것도 이 같은 경기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상황이 다르다. 산업구조가 서비스업 일변도로 재편되지 않았고 정부 정책 효과도 미국처럼 강력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는 물론 환율과 무역수지 등 대외 변수까지 감안해서 펼쳐야 하기 때문에 정책 효과도 불확실하다.

우리나라의 경기 국면은 2020년 5월 코로나19에 따른 경기 저점을 겪은 후 상승기에 접어들어 2022년 9월 경기 정점을 찍은 후 다시 하강 국면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우리나라 경기 하강 국면 기간이 평균 20개월 정도였던 것을 감안하면 우리 경제는 내년 상반기에나 경기 저점을 형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기사 전문은 매경엠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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