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델라의 팬이 아니다”…‘만델라의 날’ 맞은 남아공 청년들의 탄식

손우성 기자 2023. 7. 1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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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전 대통령 탄생 105주년
NYT “만델라의 날 분위기 달라져”
집권 여당에 대한 청년층 분노 확산
라마포사 대통령은 푸틴 감싸기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게티이미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18일(현지시간)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탄생 105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다. 남아공은 만델라 전 대통령 생일인 7월 18일을 ‘만델라의 날’로 정하고 매년 그의 업적과 저항 정신을 기린다.

하지만 올해 만델라의 날은 예년과는 사뭇 다른 침체한 분위기 속에 지나갔다. 극심한 경제난과 실업률, 정치권의 부정부패로 고통받는 남아공 청년들은 만델라 전 대통령의 유산이 사라졌다며 탄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만델라 전 대통령이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만델라의 날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남아공의 가라앉은 분위기를 전했다. 과거 만델라 전 대통령의 얼굴을 새긴 담요를 뜨거나, 공원에 모여 쓰레기를 줍는 등의 자발적인 행사가 남아공 전역에서 펼쳐졌지만, 올해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가장 큰 원인으론 집권 여당의 무능이 꼽힌다.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얼이 담긴 정당이다. ANC는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체제를 무너뜨린 일등 공신으로,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1년부터 6년간 ANC 의장을 지냈다.

ANC는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폐지에 따라 치러진 첫 흑백 통합 선거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단 한 번도 권력을 내주지 않을 정도로 신임을 얻었다. 하지만 NYT는 “부패와 무능, 엘리트주의가 ANC를 망가뜨렸다”며 “ANC가 남아공 전역에 퍼뜨린 만델라 전 대통령의 이미지는 영웅에서 희생양으로 바뀌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청년층의 만델라 전 대통령과 ANC에 대한 존경과 지지는 점점 약해지는 추세다. 요하네스버그 법원에서 비정규 사무직으로 근무하는 22세 오펜스 테베는 NYT에 “나는 만델라 전 대통령의 열렬한 팬이 아니다”라며 “법원 로비에 있는 그의 동상을 일부러 쳐다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NYT에 따르면 올해 15~34세 남아공 청년들의 실업률은 46%에 달한다. 남아공 인간과학연구위원회가 2021년 발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0%가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2010년 같은 조사에서의 49%보다 크게 상승한 수치다. 반대로 정부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26%에 그쳤다.

22세 영화제작자인 오네시모는 “어쩌면 노인들은 여전히 만델라 전 대통령의 유산에 기대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선거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의 얼굴을 ANC가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 짜증이 난다”고 말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게티이미지

라마포사 대통령의 비리 의혹도 비호감 요소다. 그는 2020년 2월 자신의 개인농장에서 400만달러(약 50억5600만원)를 도둑맞은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야권에선 라마포사 대통령이 부정부패로 축적한 비자금 정체가 드러날 것을 우려해 도난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근거 없는 소리”라며 일축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은 풀리지 않고 있다.

ANC는 2019년 총선에서 57%의 득표율로 전체 400개 의석 가운데 230석을 확보했지만, 1994년 이후 처음으로 투표율이 60% 아래로 떨어지며 차가운 민심을 확인했다. 외신들은 내년 총선에서 ANC의 과반 의석이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다.

남아공은 다음 달 22일부터 24일까지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리는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 정상회의에 푸틴 대통령을 초청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 회원국인 남아공은 푸틴 대통령에게 떨어진 체포 영장 집행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를 피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실제로 이날 남아공 고등법원이 공개를 명령한 법원 서면진술서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체포한다면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서면진술서는 제1야당인 민주동맹(DA)이 “정부가 푸틴 대통령을 체포해 ICC에 신병을 인도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한 데 대한 라마포사 대통령의 답변 성격으로 작성됐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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