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 육체노동자, 폭염 사망 위험 세배 더 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비드 칸(39)은 배달 노동자다. 최근 그는 하루 걸러 한 번 진통제를 먹으며 일한다. 폭염으로 인한 두통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18일(현지시간) 23개 도시에 폭염 경보를 발령하는 등 최근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이날 수도 로마는 역대 최고인 41.8도를 기록했다. 밀라노도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가리켰다.
고소득층은 냉방이 잘 된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시원한 날씨를 찾아 휴가를 떠나지만 칸과 같은 배달 노동자들이나 건설 노동자들은 그럴 여유가 없다.
뉴욕타임스(NYT)는 남부 유럽의 기온이 40도를 넘나드는 가운데 폭염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럴 수 없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이 부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모바일 앱으로 세차 서비스를 신청한 이들을 찾아가 세차를 해주는 시몬 놀디(40)는 지난달 하루밖에 쉬지 못했다. 그는 폭염 속에서 허리를 굽히고 일하느라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온몸이 아팠다면서 “이런 상태에서 일하는 건 비정상적이다. 공평하지 않고 정의롭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폭염으로 사망한 희생자도 모두 육체 노동자다. 지난 12일 밀라노 남동쪽 도시 로디에서는 44세 노동자가 40도 넘는 폭염 속에서 도로 신호 관련 작업을 하던 중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같은날 피렌체의 한 창고에서는 61세 청소 노동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직후 사망했다.
사회학자 클라우디아 나로키는 “폭염의 영향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면서 “역설적이게도 폭염에 가장 많이 노출된 사람들이 가장 수입이 적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여름 유럽에서는 폭염으로 6만1672명이 사망했다. 아직 사망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분석이 이뤄지지 않았으나 고령자, 육체 노동자, 저소득층 등 취약계층에 피해가 집중됐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유럽에서 7만명이 사망해 사상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03년 여름에도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2004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6~8월 폭염으로 인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사망한 이들 중 사회경제적으로 최하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17.8%를 차지해 최상층에 해당하는 이들(5.9%)보다 3배 더 많았다.
이웃나라 프랑스에서도 사정이 비슷했다. 2006년 ‘유럽공중보건저널’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2003년 8월 프랑스 육체 노동자들의 사망 위험은 관리직보다 세 배 더 높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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