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하는 마음 ‘그럴 수 있어’…양희은이 들려주는 ‘인생담’[플랫]

플랫팀 기자 2023. 7. 19.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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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년 차 가수, 24년째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 일흔의 나이…. 가수 양희은의 이력을 따져보면 새삼 놀랍다. 1971년 발표한 데뷔곡 ‘아침이슬’의 생명력처럼, 양희은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매일 아침 특유의 크고 풍부한 목소리로 라디오 청취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까마득하게 어린 후배 뮤지션들과 함께 신곡을 발표한다. 그는 현 시대와 같은 걸음으로 걷고 있다. “언제까지 해야겠다는 계획은 없어요. 허락할 때까지 해야지. 다만 노래방에서 계속 마이크 혼자 쥐고 있는 늙은이 꼴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후배들한테 늘 이야기해요. 못 들어주겠으면 못 듣겠다고 얘기하라고. 그런 얘기를 해주는 게 진짜 친구죠.”

양희은은 에세이스트이기도 하다. 1993년 <이룰 수 있는 사랑>, 2021년 <그러라 그래>를 펴낸 데 이어 최근 <그럴 수 있어>(웅진지식하우스)도 출간했다. 늙어가고 아픈 이야기, 주변의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 음악을 대하는 마음, 과거와 현재의 어려움을 버티게 해준 가족과 우정에 대한 이야기 등 ‘인생담’이 그의 노래처럼 담담하고도 밀도있게 담겼다. 양희은을 지난 10일 서울 마포구의 한 책방에서 만났다.

가수 양희은씨가 10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시작에 앞서 신작 에세이 <그럴 수 있어>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그러라 그래’가 남들의 시선이나 참견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그럴 수 있어’는 한층 포용적이고 확장적이다. 타인의 허물이나 실수에 대해 무 자르듯 판단하지 않고 ‘그럴 수 있어’라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태도다. ‘그러라 그래’도 어렵지만 ‘그럴 수 있어’는 더 어렵다. ‘그럴 수 있어’의 경지에 이르는 법을 묻자 양희은은 답한다. “세월이에요. 놓으라고 일부러 하지 않아도 스르륵 놓아지는 게 있어요.”

노래는 되불러주는 사람의 것
노래 빚 갚으려 선 광화문 광장
무대에서 내려다본 촛불, 참 아름다워

양희은은 ‘아침이슬’과 떼려야 뗄 수 없다. 1971년 8월 발표한 ‘아침이슬’에 대해 그는 “필연 같은 우연, 운명 같은 노래”라고 말한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 ‘가장’으로서 애쓰던 시절 불렀던 노래다. “노래 끝부분이 너무 좋았어요.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를 부를 때 기분이 확 풀리는 것 같더라고요. 집안 사정도 안 좋아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부른 노래였죠. 시위 현장에서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내가 부른 그 노래 맞나’ 생각이 들어 머리끝이 쭈뼛했죠.”

양희은의 1집 아침이슬

‘노래의 사회성’을 이때 깨달았다. “노래는 자기가 작곡·작사하고 불렀다고 해서 자기 거는 아니에요. 노래는 되불러주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당시 젊은이들 가슴속에 부글부글하는 게 있었는데, ‘아침이슬’을 통해서 마음속의 답답함을 풀어내는 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양희은은 “이 버거운 노래 빚을 어찌 다 갚을까. 언젠가 갚고 싶었다”고 말했다. 2016년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광화문 광장에 올랐다. ‘아침이슬’ ‘상록수’ ‘행복의 나라’ 세 곡을 불렀다. “무대에서 내려다본 촛불은 참 아름다워요. 무대에 서는 사람 아니면 몰라요. 수억 개의 반딧불이가 빛나는 그런 느낌이 있죠.”

53년차 가수의 ‘무대공포증’
패티김, 이미자, 윤복희 등 선배 가수에 대한 ‘존경’
악뮤 등과 ‘뜻밖의 만남’···후배와 함께 새로운 음악

양희은은 ‘양희은 노래’에 갇히는 걸 거부한다. “70년대 노래를 되풀이하며 추억을 파먹는 것도 너무 싫다”면서 2014년부터 후배 가수들과 함께 ‘뜻밖의 만남’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윤종신과 함께 처음 작업한 ‘배낭여행’부터 김창기와 함께한 ‘엄마가 딸에게’, 악뮤(AKMU)와 같이한 ‘나무’, 성시경과 함께한 ‘늘 그대’까지 9곡을 작업했다. “양희은 냄새가 너무 짙은 노래 말고, 젊은 후배들이 나를 지도해주고, 방향도 바꿔주고 그런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가수 양희은씨가 10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 ‘작업책방 씀’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53년 차 가수지만 무대는 늘 어렵다. 그는 무대 공포증이 있다고 털어놓는다. “무대가 뭔지 알 만하니까 무섭더라고요. 아주 익숙해서 무대에서 놀면 사람들이 그거 다 알아요. 내 두려움에 대한 해답이 없었거든요. 왜 이러지, 정말 좀 모자란 거 아닌가. 그런데 두려움이 있어야 무대에 서는 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니, 오히려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공연이 시작되고 노래가 객석을 뚫고 들어가면서 숨 차고 떨리는 게 조절되는 것 같아요.”

책에서 그는 패티김, 이미자, 윤복희 등 선배 여성 가수들에 대한 존경도 표한다. “워낙 남들의 시선을 받아야 유지되는 직업이다 보니 때로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험한 길 앞서간 선배 여성 가수분들, 그들이 무대 뒤에서 차별과 험한 말들을 견디며 불러온 노래들이 사람들의 외로움을 얼마나 달래주었나.” 양희은도 후배 가수들에게 힘을 주고 있을 것이다. 양희은은 후배 가수 정밀아의 노래 ‘언니’를 리메이크하고 있다. “언니 아직 안 자나요.…그냥 얘기 좀 들어줘요”로 시작되는 노래다. “노랫말이 너무 좋더라고요. 내가 한번 내 식으로 불러보고 싶었어요. 어린 날 나는 언니가 없었으니까, 살면서 사회에서 만난 숱한 언니들의 도움이 너무 고마웠어요. 그런 마음을 표현해보고 싶어요.”

‘소녀 가장’으로 청바지에 고무신 신고 무대에 올라
자매 셋이서 상처를 연극삼아 놀며 치유
“여자의 적은 여자는 틀렸어”···여성들끼리 연대가 힘이 돼

양희은은 ‘소녀가장’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3녀 중 장녀로서 빚더미에 앉은 가세를 일으키려 어릴 때부터 통기타를 메고 무대에 섰다. 운동화 밑창이 갈라져 빗물이 새어들어오자 집에서 고무신을 찾아 신고 무대에 올랐다. “자매가 셋이었다는 게 큰 힘이 됐어요. 어릴 때는 셋이서 연극하면서 우리한테 상처 준 사람들을 희화화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놀았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사이코드라마더라고요. 자기 속의 것을 드러내고 연극하듯이 풀어낸 거잖아요.”

젊은 시절의 양희은.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지금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산다. 그에게 ‘장녀’의 짐은 평생을 함께한다. “짐이라는 것이 너무 싫다. 책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는 양희은은 한 달에 한 번은 ‘나를 위한 여행’을 떠난다. 혼자 말 없이 걷고 구경하면서 온전한 쉼의 시간을 보낸다.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친구들도 큰 힘이다. ‘시스터 후드’, 여성연대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 양희은은 “ ‘여자의 적은 여자다’라는 말은 틀렸다”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려움을 털어놓을 만한 대나무 숲을 만들어야 해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의 질도 중요하고요. 그게 반드시 옛날부터의 친구일 필요는 없어요.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과도 굉장히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요. 치유의 장이 있어야 해요. 누가 만들어 주지 않아요. 스스로 만들어야 해요.”

양희은이 세상과 연결되는 큰 통로 중 하나는 라디오 <여성시대>다. 24년간 진행자로 일하며 5만8000개가 넘는 사연을 읽었다. “하루에 사연이 250~300통 들어와요. 다양한 사람들의 이런 저런 삶을 들여다보는 특권을 갖게 됐죠. 사람들이 욕심 없이, 털어놓을 데가 없는 사연들을 가슴으로 써서 보내주니까 (마음속으로) 훅 들어와요. 라디오 제작진이랑 ‘여성시 대학교’라고 말을 해요. 배우는 게 참 많다는 생각을 해요. 라디오를 통해서 사람들과 늘 만나고 있다는게 오래 갈 수 있는 가수가 될 수 있게 한 축복이었던 것 같아요.”

나이를 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양희은은 자신이 “극소심 A형”이라고 말한다. 요즘 말로 하면 MBTI ‘I’에 가까울 것이다. “당장 주어진 일에 충실한 것이죠. 장대한 계획을 세우고 다음에 뭐 해야지 이런 거 하나도 없어요. 그렇게 잘 흘러가는 거죠.” “노래도 방송도 삶도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그에게 ‘마무리’는 완성형이 아니라 흐름에 몸을 맡기며 현재에 충실하는 태도에 가깝다. “젊은 세대와 교류하고 놀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싶다”는 양희은이 흘러가는 곳은 다음 세대로, 미래로 이어지는 물줄기일 것이다.

▼ 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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