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취타' 슈가와 취하는 타임, 슈가에 취할 타이밍
아이즈 ize 조이음(칼럼니스트)
슈가(SUGA)는 2013년 데뷔한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다. 일곱 명으로 구성된 그룹에서 RM, 제이홉과 함께 랩을 담당한다. 하얗고 말간 얼굴과 시원하게 웃을 때마다 열리는 입동굴(치아 양옆으로 생기는 공간)이 귀여운 인상을 풍기지만, 외모가 주는 기대감과는 상반되는 낮은 톤으로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처럼 이율배반적인 그의 매력은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카리스마 넘치는 래핑으로 완벽한 가사 전달력까지 뽐내며 관객과 청중을 사로잡는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음악 작업에 관심이 있었다는 슈가는 방탄소년단 앨범 대부분에 작사 작곡가로,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다. 방탄소년단이 점차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2016년에는 'Agust D'라는 활동명으로 동명의 첫 믹스테이프를 공개했다. 이듬해에는 타 가수에게 자신이 쓴 곡을 제공하고, 프로듀싱도 맡았다. 방탄소년단 활동 중에도 개인의 성장을 게을리하지 않던 그는 방탄소년단이란 그룹의 멤버 슈가라는 이름과 함께 각각의 정체성을 지닌 또 다른 이름을 키웠다. 그룹 내에선 낼 수 없던, 좀 더 솔직한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힙합 아티스트 'Agust D'와 방탄소년단과 자신의 곡이 아닌, 외부 작업을 진행하는 프로듀서 'Prod.SUGA'다.
여기까지가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슈가의 또 다른 이름들이었다면,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명)만이 알고 있는 그의 이름이 있다. 2013년 방탄소년단이 데뷔 100일을 맞아 공개한 콘텐츠 'BTS 꿀FM 06.13'를 통해 진행자로 정식 데뷔(?)한 슙디(DJ 슈가의 애칭)다. 이후 슙디는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으로 맞이하는 첫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진행한 '꿀FM'을 비롯해 매해 방탄소년단의 데뷔 날에 공개된 동명의 콘텐츠에서 빼어난 진행 솜씨를 뽐냈다. 특유의 저음으로 차분하고도 능숙한 진행으로 에너지 넘치는 여섯 멤버들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프로그램을 이끄는 그의 진행 솜씨는 해를 거듭할수록 일취월장했다. 이에 다수의 아미는 그가 실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서 '진짜 슙디'로 취직하기를 바랐을 정도. 국경을 넘나드는 바쁜 스케줄 탓에 이 기대가 언제쯤 현실로 이뤄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꿀FM'으로 쌓인 진행력과 아미의 바람이 만나는 하나의 지점은 탄생했다. 그의 이름을 내건 유튜브 콘텐츠 '슈취타'다.
방탄소년단 공식 유튜브 채널 '방탄TV'에서 공개되는 '슈취타'는 호스트가 된 슈가가 게스트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토크 콘텐츠다. 2020년 Agust D가 발표한 두 번째 믹스테이프 'D-2'의 타이틀곡 '대취타'가 연상되는 제목은 술잔을 기울인다는 설정에서 유추할 수 있듯 '슈가와 취하는 타임'의 줄임말이다. 다양한 음주 콘텐츠들과의 차별점이라면 초대된 게스트가 자신이 좋아하는 주류를 가져와 슈가와 한 잔씩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 호스트인 슈가는 술과 어울리는 안주를 정성껏 준비하고 게스트를 맞이한다.
'슈취타'의 매력은 정형화된 토크쇼 형식에서 한 발짝 비켜나 있다는 데 있다. 여느 방송에서도 초대하고픈 게스트로 꼽히는 방탄소년단 슈가가 호스트로 나서 누군가를 초대한다. 게스트 맞춤형 호스트인 슈가의 유연하고도 안정적인 진행으로 매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나는 느낌을 선사한다. 지난해 12월 5일, 데뷔 9년 만에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RM과의 만남을 시작을 알린 '슈취타'는 이후 방송인 신동엽, 배우 이성민 이나영, 가수 타블로 태양 등 직업도 취향도 각기 다른 스타들을 초대했다. 이들과 마주한 슈가는 경청하는 자세로 게스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때로는 편안한 분위기로 대화를 주도한다. 대본에 준비된 질문이 아닌 자신의 궁금증 또는 고민을 토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챕터2'를 선언하고 개인 활동을 시작한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새로운 시작과 함께 '슈취타'를 찾는 건 큰 수확이다. 가요 프로그램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방송에서 만날 수 없었던 방탄소년단이었기에 개개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채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RM 지민은 물론 호스트 슈가 또한 Agust D로 솔로 앨범 발매를 앞두고 '슈취타'에 게스트로 등장했다(Agust D 출연 당시 진행은 RM이 맡았다). 입대를 사흘 앞두고 녹화에 임한 진의 진솔한 이야기는 '슈취타'에서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선물. 이들은 익숙하고 친근한 이와 대화를 나누듯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 속에는 일곱 명이 함께하던 긴 시간을 지나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개개인의 시간을 채워야 한다는 중압감, 지난 시간에 대한 소외와 각자의 이름으로 시간을 보내고 맞이할 2025년에 대한 기대감 등이 솔직하게 담겼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슈가에 대해 겉으로는 까칠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챙겨주는 세심함을 지녔다고 말한다. 이를 반증하듯 슈가는 '슈취타' 첫 회에서 "술을 곁들인 토크 방송을 지향할 뿐"이라며 "술에 잔뜩 취해 실려가는 방송을 원하는 건 아니"라고 확실히 한다. 또 술을 못 마시는 게스트가 나온다면 차를 대신 마실 수 있다고도 말한다(실제로 태양은 출연 당시 식혜와 수정과를 준비해왔다). 음주 콘텐츠의 색을 지녔지만, 술을 필수 요소가 아닌 편안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곁들이는 요소로 사용한 거다.
때문에 '슈취타'를 처음 접하는 이에겐 어쩌면 기대보다 소소하고 어쩌면 시시한 프로그램으로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강요된 웃음 없는,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소소하게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는 점만으로도 '슈취타'가 궁금해질 이유는 충분하다. 확실한 건 슈가 본연의 매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 그가 경쟁 프로그램으로 생각하고 의식한다는 tvN '유퀴즈'처럼 꾸준히 부담 없고, 꾸준히 따뜻한, 오래오래 만날 수 있는 콘텐츠이길 바라본다. 아울러 술잔을 기울이는 슈가와 함께 취하고, 매회 발견되는 슈가의 새로운 매력에 취하는 이 콘텐츠에 함께 취해 보자고, '슈취타'를 아직 모르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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