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납토성 둘러본 문화유산 전문가들 "지역공동체와 머리 맞대야"
"'유적 보존 vs. 개발' 곳곳에 있지만…포기말고 함께 노력해야"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유적을 발굴하는 고고학자의 시선과 일반 사람의 시선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나아갈지 지역 공동체와 함께 고민하고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국제문화재보존복구연구센터(ICCROM·이크롬)의 웨버 은도로 사무총장은 19일 문화유산 보존과 개발 문제에서 가장 우선해야 할 가치를 묻자 이같이 말했다.
이크롬은 문화유산 보존과 복구 분야에서 최고로 꼽히는 국제기구다.
한국을 포함해 137개 국가가 가입돼 있으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3대 자문기구로 여겨진다.
학술대회 참석을 위해 3박 4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그는 백제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475년) 왕성으로 확실시되는 서울 풍납토성 유적 공원과 북쪽 성벽 일대를 답사했다.
이크롬의 사무총장이 풍납토성 일대를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은도로 사무총장은 주요 유구(遺構·옛날 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를 재현한 유적 공원 등을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매우 인상적이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발굴조사단을 꾸려 고고학적 조사를 진행하면서 주민을 위한 공원을 조성한 것과 관련, "한국 정부의 노력은 칭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짐바브웨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요크대에서 고고학·건축보존학 등을 공부한 전문가인 그는 풍납토성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에도 솔직한 견해를 밝혔다.
풍납토성은 500년에 걸친 백제 한성기의 모습이 오롯이 담긴 유적으로 평가받으나, 유적 보존·발굴과 주민의 재산권 문제가 충돌하면서 갈등이 불거진 바 있다.
지난 2000년 아파트 건축 예정지 발굴 현장 일대가 주민들에 의해 무단으로 파헤쳐져 훼손된 이른바 '경당지구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은도로 사무총장은 "문화유산 보존과 개발이 상충하는 문제는 곳곳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고학적 유적이 있다고 해서 모두 (지켜야 할) 유산은 아니다"며 "유산으로서의 가치, 의미가 공동체에서 받아져야 비로소 유산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는 '필요 없다', '보호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할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함께 노력해야 한다"며 정부와 지자체, 지역 주민의 상생을 주문했다.
이날 은도로 사무총장과 함께한 전문가들은 풍납토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고고학자인 피키리 쿨라코올루 튀르키예 앙카라대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유적"이라며 "백제의 왕성(王城·왕궁이 있는 도시) 흔적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쿨라코올루 교수는 일각에서 고대 집터 흔적을 '문화재'로 보지 않는 견해도 있다고 하자 눈을 크게 뜨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문화유산과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함께 나아갈지가 중요하다. 여기에는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터키 남부 도시인 시데 유적 사례를 언급하며 "약 2년 전부터 지역민에게 주거나 상업용 재개발을 허가하되, 발굴 과정에서 나온 주요 유구는 보존하도록 하는 식으로 지속 가능한 방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런 과정은 지자체 차원이 아니라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새로 짓는 건물도 최대 2층까지만 허락해 고유의 경관은 해치지 않도록 한다"고 덧붙였다.
은도로 사무총장 일행은 이날 풍납토성 발굴 현장 외에도 또 다른 유적인 몽촌토성 발굴 현장, 한강 유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모여있는 한성백제박물관을 찾았다.
이들은 20일 국립문화재연구원과 함께 주최하는 학술대회에 참석해 '세계의 고고학 : 고대 도시와 왕성'을 주제로 주요 고대 유적에서 이뤄진 조사·연구 성과와 보존 정책 등을 논할 예정이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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