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패권 시대 우리말] ①"처음 들어봐요"…난해한 전략기술 용어, 육성 걸림돌 우려

문세영 기자 2023. 7.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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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대 국가전략기술’ 용어 이해도 실태 조사
정부는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인공지능, 이차전지, 첨단로봇 등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육성하겠다고 밝혔다. Andrey Suslov/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기상 재해 등 과학기술과 관련된 이슈가 지속적으로 불거지고 있습니다. 우주개발, 양자컴퓨팅, 챗GPT 등 첨단 과학기술도 어느새 피부로 체감할 정도로 성큼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국가전략기술을 선정하고 과학기술 중심의 패권 경쟁을 선도하겠다고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려지는 다양한 전문용어는 국민들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어렵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국어문화원연합회와 수년째 과학기술, 의학 용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방안을 찾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정부가 의지를 보이고 있는 국가전략기술 관련 용어들을 들여다보고 국민들의 세금이 투입되는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UBS 어디 있니?” USB메모리가 휴대용 저장매체로 대중화되기 시작할 무렵, 이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USB를 종종 UBS라고 부르곤 했다. 새로운 과학기술 용어는 특히 외국어 등이 섞여 있어 의미 파악이 어렵고 기억하기 쉽지 않다. 

과학기술은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는 핵심이다. 윤석열 정부는 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10월 ‘국가전략기술 육성방안’을 발표했다. 인공지능, 우주항공, 양자 등 미래 먹거리가 되는 12개 신흥·핵심기술을 선정해 최고 기술 선도국 대비 90%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하고 육성하겠다는 것이다. 

차세대 기술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지속하려면 투자에 필요한 예산을 세금으로 내는 국민들의 이해도가 필요하다. 지속적인 투자로 기술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면 관심을 갖는 국민이 늘고 전문가 양성 및 연구 지원 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적어도 핵심 용어만큼은 어느 정도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가 집중 육성을 약속한 ‘12대 국가전략기술’ 용어들을 국민들은 실제로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 설문 참여자 58.7%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못 들어봤다”

동아사이언스는 국민들이 국가전략기술 용어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지난 6월 26~27일 이틀간 데이터플랫폼기업 ‘오픈서베이’를 통해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국가전략기술 용어 이해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41문항으로 구성된 이번 조사의 표본 오차는 ±2.03%P(80% 신뢰 수준)다. 

조사 결과 대한민국 미래를 책임질 차세대 기술에 대한 국민 인지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2대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첨단 이동수단 ▲차세대 원자력 ▲첨단 바이오 ▲우주항공·해양 ▲수소 ▲사이버보안 ▲인공지능 ▲차세대 통신 ▲첨단로봇·제조 ▲양자 등이다. 

이 중 우주항공·해양 관련 용어인 ‘대형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은 58.7%가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양자 관련 용어인 ‘양자센싱’은 응답자의 55.5%, 차세대 통신 관련 용어인 ‘오픈랜’은 49.5%, 반도체 관련 용어인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는 47%가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절반이 들어본 적이 없는 용어들이었다.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인 우주항공·해양 관련 용어 ‘대형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인지도 조사 결과, 58.7%가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오픈서베이 제공.

반면 첨단 모빌리티와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용어에 대해서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용어들이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다고 용어의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기차, 수소차, 자율주행시스템처럼 용어만 봐도 의미 유추가 가능하거나 매체를 통해 자주 접했을 가능성이 높은 용어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았다. 네트워크·클라우드 보안, 데이터·AI 보안처럼 외국어를 포함한 용어도 디지털 시대에 사는 현대인의 일상이나 업무와 연관성이 높을 땐 인지도가 있었다. 

‘전기차·수소차’는 응답자의 24.3%, ‘자율주행시스템’은 21.9%가 ‘용어의 의미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사이버보안 관련 용어인 ‘네트워크·클라우드 보안’은 12.5%, ‘데이터·AI 보안’은 10%가 용어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처럼 설명 가능하다고 답한 비율이 높은 용어들 역시 80~90%의 응답자들은 정확한 의미를 모르는 용어들이었다는 점에서 국가전략기술 관련 용어들의 인지도와 이해도는 낮은 수준임을 보여주고 있다.   

12대 국가전략기술 중 하나인 첨단 모발리티 관련 용어인 ‘전기차, 수소차’ 인지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24.3%가 ‘용어의 의미를 남에게 설명할 수 있을 만큼 잘 알고 있다’고 답했다. 오픈서베이 제공.

대형 다단연소사이클 엔진, 양자센싱, 오픈랜, 고집적·저항기반 메모리처럼 일상에서 접하기 어렵거나 용어만 봐서는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용어들은 생소하게 느끼는 경향을 보였다. 해당 용어들은 외국어나 한자어가 포함돼 있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단어만으로 의미를 유추하기 힘들다. 

● 첨단산업 용어 어려운 이유…‘뜻 유추 안 돼서, 외래어·한자어여서’ 

이번 조사 대상자 1000명 가운데 4년제 이상 대학 재학 및 졸업자는 538명, 대학원 재학 이상은 105명으로 응답자의 3분의2가 고등교육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전략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기술 용어에 대해 잘 모르는 경향을 보였다. 

참여자의 70.8%는 근로자(사무/기술직 32.5%, 자유/전문직 13.4% 등)였으며 평균 연령은 40.73세였다. 사회·경제적 활동을 하는 중년층이 이번 설문조사의 평균 참여층이었다는 점에서도 국가전략기술 용어에 대한 인지도 개선이 필요할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설문조사는 ‘고등교육’, ‘경제의 허리’, ‘뉴스 주요 소비층’ 등으로 요약되는 계층의 참여율이 높았지만 국가전략기술 용어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국민 전체의 이해도는 더욱 낮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 용어가 ‘매우 어렵다(12.6%)’거나 ‘어렵다(30.6)’는 응답은 43.2%였다. 응답자 절반이 국가 육성 산업 용어에 어려움을 느꼈으며, ‘매우 쉽다’는 응답은 0.9%에 불과했다. 

어렵다고 느낀 이유는 ‘배경지식이 없어서’가 61.5%로 가장 많았고 ‘생소해서’가 44%, ‘용어 자체로 뜻을 유추하기 힘들어서’가 42.5%, ‘외래어, 한자어여서’가 24.1% 순이었다. 용어 자체만으로 뜻을 알기 힘들거나 외래어, 한자어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다는 응답이 66.6%로 보다 친숙한 용어로 바꿀 수 있는 용어는 바꾸고, 바꾸기 어려운 용어는 인지도, 이해도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에 대한 성별 고정관념 역시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기술 분야는 성별 기준 남성이 많이 진출하는 분야라는 점에서 산업 용어에 대한 성별 인지도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설문 대상 용어 36개 중 첨단바이오 관련 용어인 ‘디지털 헬스 데이터 분석, 활용’, ‘유전자 세포 치료’, 첨단로봇·제조 관련 용어인 ‘인간·로봇 상호작용’ 등 3개를 제외한 모든 용어에서 여성의 인지도가 낮았다. 이차전지 관련 용어인 ‘리튬이온전지’는 남성의 5.3%, 여성의 16.4%가 처음 들어본다고 답해 3배 이상 성별 인지도 차이를 보였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려면 육성 산업에 대한 홍보와 더불어 성별 고정관념을 완화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확인됐다. 무엇보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용어 자체의 어려움이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도 확인됐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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