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과자 양산하는 근로기준법
근로기준법 제107조부터 제114조까지는 벌칙을 규정하고 있다. 그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부터(제107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것까지(제114조) 다양하지만, 근로기준법상 거의 모든 주요 규정 위반에 형사처벌이 부과된다. 예를 들어, 임금을 체불하는 경우에는 근로기준법 제36조 위반이 되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고(제109조 제1항), 5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시킨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제110조 제1호). 이와 같이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규정 뿐만 아니라 절차적 규정들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이 부과되어 있다. 예를 들어, 취업규칙 변경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경우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근로기준법은 ‘형법’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근로관계는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사법(私法)관계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와 같은 개인간의 관계를 형법으로 규율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있다. 특히 임금체불의 경우에는 민사상의 채권채무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가하는 것은 법 체계 전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매우 이례적이다. 심지어 양육비 채권을 미이행하는 경우에도 이를 직접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을 보면, 임금체불의 경우가 매우 이례적인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근로기준법은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강제하기 위한 행정적인 규제를 가하는 법인데, 행정적인 목적을 위해서 광범위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법치국가에서 형사처벌이라는 것은 최후수단적으로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헌재 2003. 6. 26. 2002헌가14 등 참조). 특히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되어 있는 규정들은 대부분 과태료로 대체가 가능한 것들이다. 예를 들어, 근로기준법은 근로조건의 서면 명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지만, 기간제법은 근로조건의 서면 명시를 하지 아니한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위와 같은 이론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실무적으로도 형사처벌은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예를 들어, 통상임금이나 평균임금의 산정이 문제가 되는 경우 이를 민사소송에서 다투는 것이 원칙이지만, 실제로는 임금체불로 진정 또는 고소가 들어가게 되면 근로감독관의 판단에 따라 형사사건의 피고인이 되어 형사처벌을 감수하며 형사소송에서 다투어야 한다. 물론 판례는 “임금 지급의무의 존부 및 범위에 관하여 다툴 만한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피고인이 임금을 지급하지 아니한 데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 그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대법원 2004. 12. 24. 선고 2004도6969 판결 등 참조)고 하여 억울한 피고인을 구제하고 있기는 하지만, 양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다투는 민사소송과 달리 자칫 잘못하면 형사처벌을 받게 될 피고인의 지위에서 임금 미지급의 상당한 이유를 다투어야 하는 것은 심리적인 부담감에서 차원을 달리한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로 공공기관이나 금융기관 등의 경우에는 억울하더라도 근로감독관의 판단을 받아들여 미지급 임금을 지급하기도 한다.
더욱이 현재 수사 실무는 사업주가 법인인 경우 대표이사를 피의자로 입건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정도 규모만 되는 회사더라도 대표이사가 직접 인사 관련 실무를 수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따라서 대표이사가 인사담당자의 관리감독에 잘못이 있을 수는 있으나 구체적인 근로기준법 위반 사실을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 위반죄로 처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와 같은 수사 실무 역시 형벌의 책임주의 원칙에 위반한다.
따라서 근로기준법상 벌칙 규정은 소수의 불가피한 규정을 제외하고 대폭 삭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근로기준법의 ‘비형벌화’ 주장에 대해서 일부 사람들은 형사처벌 없이는 근로기준법의 준수를 강제하기 어렵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형사처벌 이외에도 과징금, 과태료, 이행강제금, 징벌적 손해배상 등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법적 방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임금체불과 같은 경우에는 형사처벌보다 근로자에게는 체당금 지급이나 징벌적 손해배상 등이 근로자에게는 더 나은 구제수단이 될 수 있다. 또한 민사소송을 수행하는 것이 시간 및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것이 문제라면, 조정이나 중재 등 다른 분쟁해결방안을 고려하고 소송구제나 법률구조 등을 폭넓게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원칙적인 방법일 것이다.
이와 같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위해 형벌만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여러 합리적인 방법으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강제하고 근로자의 권리를 보호할 합리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전근대적인 형벌 만능주의의 사고를 벗어던지고, 근로기준법의 ‘비형벌화’를 통해 억울한 전과자의 양산을 막기를 기대한다.
김종수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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