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인생에서 묻어난 시의 형상…송인관 ‘골목길’
시인의 일상을 담은 한 편의 잔잔한 시는 편안함을 주면서도 몰입하게 하고, 여운을 남긴다. 여든을 넘긴 세월을 돌아보며 인생의 깨달음, 행복한 찰나의 순간 등을 담은 시들이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을 기대하게 하며 강한 울림을 준다.
송인관 시인이 여섯번째로 펴낸 ‘골목길’(네오딕 刊)이 100여편의 시를 담고 출간됐다. 시집의 제목처럼 골목길에서 고무줄 놀이를 하던 시인의 어린 날들, 코로나19로 인한 일상의 고독, 산책길에서 본 소소한 풍경 등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시어로 풀어냈다.
‘세월 참 빠르다/ 한순간 개발에 사라져간 사람들/ 바뀐 풍경에 떠오른 낯선얼굴/ 나 홀로 남아 거기였다고 짚어보네/ 함께놀던 내 반쪽 광식아 죽진 않았지?/ 별밭을 뛰놀던 옛친구 여전한 별빛/ 오늘은 초가집 처마밑 뒤지기가 적당한 밤/ 참새구이 익어가던 냄새가 그립구나 친구야’.
제목이기도 한 ‘골목길’이라는 시는 체험에서 다가오는 시의 형상을 띠면서 작가와 독자가 만나는 자리를 평범하게 한다. 마치 그가 나인 양 공감하게 해 간격을 소멸한다. 누구나 그리워하는 고향 옛날을 그려 자연스럽게 교감의 장을 마련했다.
‘고슴도치들의 지혜’에서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시구에 담아 만남의 기쁨 뒤 이어지는 이별의 슬픔을 담았다. ‘돌고 도는 인생’에서는 행복이 비켜 사라지지 않고 이웃에게까지 퍼져 지속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황혼길’에서는 인생의 사계절 중 겨울에 들어선 시인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사유를 담았다. ‘비애와 참극’, ‘코로나들의 이야기’에선 당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다루면서 우리의 정치를 비판하거나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맞닥뜨린 현실을 풍자하기도 했다.
김용하 시인은 그를 “잔잔한 호수에 오리 노닐 듯 여유롭게 보이지만, 끝없이 물살을 헤치고 자맥질하는 고고한 백조”로 비유하며 “쉼 없이 시강을 헤엄쳐 시 낱알을 건져내려는 집념이 남다르다”고 평했다. 여든을 넘긴 시인의 열정이 시집 곳곳에 베어 사색에 잠기게 한다.
저자는 1938년 과천에서 태어나 2010년 73세 때 수필, 2011년 74세 때 시로 문예지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했다. 제10회 문학세계문학상 수필 부문 본상, 한국예술문화단체연합회 예술문화공로표창장 등을 수상하며 고령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보람 기자 kbr1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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