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미군들, 北 영화에서 ‘악당 미국인’ 맡으며 체제선전 활동
전날 주한미군 군인 1명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월북한 가운데 과거 월북한 미군 병사들의 삶이 재조명 되고 있다. 월북 미군들은 북한 영화에서 ‘악당 미국인’ 역할 등을 맡으며 체제선선 활동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1962년부터 1965년까지 DMZ에 근무하던 미군 병사 4명이 탈영하여 월북했고, 이들 중 찰스 젠킨스를 제외한 3명은 북한에서 생을 마감했다.
찰스 젠킨스의 회고록에 따르면 월북 초기 이들은 문화와 식습관의 차이, 북한 내부의 반미정서 등으로 적응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4명의 월북 미군은 간소한 단칸방에서 생활했는데 하루에 10시간씩 김일성의 사상을 강제로 학습해야 했고 정기적으로 구타를 당했다. 견디지 못한 이들은 1966년 북한을 탈출하기 위해 평양 주재 소련 대사관에 찾아가 망명 신청을 했지만 소련대사관의 거부로 실패했다. 이후 북한에서 고강도의 사상교육을 받으며 1972년 북한 시민권을 부여 받고 각자 따로 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계속 감시를 받고 구타와 고문을 겪어야 했다. 월북 미군4명은 후계자로 내정된 김정일의 영화산업에 동원됐는데 1978년 개봉된 북한 첩보시리즈물 ‘이름 없는 영웅들’에 참여했다.
1962년 첫 번째로 월북한 미군은 주한미군 사병 출신 래리 앨런 앱셔다. 그는 1983년 40세의 나이로 북한에서 사망했다. 같은해 사병 출신 제임스 조셉 드레스녹이 월북했다. 드레스녹은 홍철수라는 북한 이름을 사용하며 2016년 사망 때까지 대부분의 인생을 북한에서 보냈다. 드레스녹은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알려진 루마니아 출신 도니아 붐베아와 결혼해 자녀를 낳았다. 드레스녹은 북한 TV·영화 선전물에서 배우로 활동했는데 대부분 그가 맡은 역할은 ‘악당 미국인’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국에서 만든 다큐멘터리 ‘푸른 눈의 평양 시민’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963년 월북한 특수 요원 출신 제리 웨인 패리쉬는 1998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하사관 출신인 찰스 로버트 젠킨스는 1965년 1월에 월북했다. 그는 2004년 납북되었다 일본으로 간 일본인 아내를 따라 일본에 정착했다. 젠킨스는 자서전에서 “세 명의 미국인 병사들과 함께 ‘자발적으로 비무장지대를 넘어온 이용가치가 높은 냉전 시대의 전리품으로 살아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때론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로, 때론 음모를 품고 북한을 공격하는 미군 함장역을 연기하는 영화배우로 살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사고를 치거나 군 생활을 하기 싫어 월북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월북한 미군은 폭행 혐의로 한국에서 체포된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드레스녹은 1962년 외출증 위조혐의로 군법회의 직전 월북했다. 젠킨스는 군생활에 염증을 느껴 소련 대사관을 통해 망명을 신청하면 포로 교환을 통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월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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