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의 일[유희경의 시:선(詩: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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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의 손잡이를 꼭 쥐고 젖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인데, 앞서가는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있다.
손잡이를 나란히 쥔 두 사람 손에 눈길이 간다.
식당 앞에선 문을 붙들어주는 손이 있다.
이쯤 되면 모든 손길에 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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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잡고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주는 아는 마음과/ 같은 소리를 내며 물을 내리고 다른 수도꼭지를 들어 올린다// 거품 속에서 손가락 사이사이가 친해진다// 손을 잡으면 안심이 된다 빠져나가지 않는 힘을 확인한다/ 이것은 나와 나의 작용’
- 김영미 ‘잡아주는 마음’(시집 ‘투명이 우리를 가려준다는 믿음’)
우산의 손잡이를 꼭 쥐고 젖지 않으려 노력하는 중인데, 앞서가는 두 사람이 우산 하나를 나눠 쓰고 있다. 손잡이를 나란히 쥔 두 사람 손에 눈길이 간다. 서로의 쪽으로 기울이고 있다. 상대를 위해서라면 내 어깨 젖는 것쯤은 상관없다는 다정. 그들과 나, 셋만 아는 비밀이 좋아서 싱긋 웃고 만다.
식당 앞에선 문을 붙들어주는 손이 있다. 비에 젖지 말고 들어오라는 배려다. 작은 선의고 커다란 기쁨이다. 이 기쁨은 세상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구나, 새삼스러운 발견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다. 우산을 접으면서 슬쩍 목례를 한다. 인사를 받은 그가 배시시 웃는다. 이쯤 되면 모든 손길에 눈이 간다. 수저를 대신 놓아주는 손, 그러다 친구의 어깨에 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는 손. 그사이 누군가의 따끈한 한 끼를 가져다주는 손. 내 앞에 놓인 이 가지런한 밥상이 마련되기까지 분주했을, 보지 못했지만 충분히 앎 직한, 무수한 손길. 나는 밥술을 뜨다 말고 내 손을 내려다본다. 지난 세 해 동안 바이러스를 옮기는 원흉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열 손가락이 활짝 몸을 펴고 있다.
문득, 이 손으로 죄짓고 살지 말아야겠다, 다짐해보는 것이다. 그야말로 평생을 다해 움직여온 이 손으로 못할 짓을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 사랑하는 바를 꼭 쥐고, 옳은 일을 위해서 움직이기에도 부족할 터다. 생각하기를 관두고 숟가락을 쥔다. 당장 해야 할 가장 신성한 행위, 먹고 살기를 위해서.
시인·서점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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