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고학력 청년들 “내 새 직업은 전업자녀·공산당원”
명문대 실직자들 전업 딸·아들 선택 늘어
국유기업 취업 기대 공산당 가입도 증가
#. 29세 중국인 줄리아(익명)는 베이징에서 게임 개발자로 일했지만 지금은 ‘전업(full-time) 딸’이다. 부모님 집에서 설거지, 식사 준비 등 집안일 일체를 맡아 하루를 보낸다. 줄리아는 이전 직장에서 하루 16시간 일하며 ‘시체처럼’ 살던 때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최근 BBC 등 외신은 중국 기업의 혹독한 근무 시간 및 환경과 암울한 고용 시장이 청년들에게 특이한 선택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조명했다.
17일 발표된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16~24세 청년 실업률은 21.3%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매체에 따르면 줄리아처럼 ‘전업 딸’ 또는 ‘전업 아들’을 자처하는 청년들은 일단은 구직 의사가 없으며 집에 머물 계획이라고 답한다. 새 직장을 찾는 게 여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중국의 기업 문화는 ‘996’(9시 출근-9시 퇴근-주 6일 근무)으로 악명 높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출퇴근 시간을 포함해 일터에서 보내지만 베이징이나 상하이 등 일자리가 많은 도시에서 월세를 내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열악한 일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 기업들이 35살이 넘은 구직자는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통상 경력 10년차 이상은 월급을 많이 줘야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35살 이하의 비교적 싼 노동력을 선호한다는 뜻이다. 30대 중반부터는 현 직장에 불만이 있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다녀야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최근 급증한 청년실업이 저학력 단순 노동자가 아닌 대학 졸업장을 가진 고학력자라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에서 대학은 엘리트 등용문이었지만 2012년부터 기존 30% 였던 대학 진학률이 60%로 증가했다. 현재의 석사 졸업장은 과거의 학사 졸업장 정도로 평가받을 정도로 학력 인플레이션이 심하다.
중국의 명문대나 해외 유학을 다녀온 대학원 졸업생이 지방대 기숙사 관리직에 지원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겨우 취업하는가 하면 국유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페트로차이나)의 행정직원 한 명 모집에는 세계적인 명문대 석·박사생 224명이 몰렸다.
생존을 위해 공산당을 선택하는 젊은이들도 증가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중앙조직부는 지난해 말 당원 수가 1년 전보다 132만명 증가해 모두 9804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대로라면 연내 1억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당원이 되면 공무원이 되거나 국유기업에 취업하는데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청년실업을 단지 ‘고용의 과정이 느리게 진행되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있다. 기업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하는 등 근본적 문제 해결에 눈을 감고 있다.
앞서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은 ‘996’ 업무 환경을 두고 “축복”이라고 언급했다가 청년층의 분노를 일으켰다. 중국 젊은이들의 롤모델이던 그가 흡혈 자본가로 평판이 180도 뒤집어지게 된 이유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청년 실업이 코로나19 팬데믹과 봉쇄정책으로 인한 단기적 결과가 아니라 산적한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부동산·개발 부문의 거품이 터지고 있고, 산더미 같은 지방 정부 부채 문제, 민간 기업을 포함해 사회 전반에 대한 공산당의 강력한 통제 등이 모두 하나로 어우러져 있단 것이다. 급기야 획기적인 정책과 지원이 이뤄지지 않으면 심각한 청년 실업이 향후 5~10년간 더 이어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 고속성장의 달콤한 시기가 끝나면 필연적으로 저성장(퇴행)의 시기가 오기 마련이지만 특히 중국은 급속도로 고꾸라지는 것도 문제다. 팡 쉬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교수는 “현재 젊은 세대는 중국의 황금기를 보낸 유년기 기억이 생생하지만 막상 그들이 본격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시기가 되자 퇴행만이 기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심각한 청년 실업은 이웃 나라를 비롯한 전세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당장 태국 등 중국인 여행자이 몰렸던 동남아 국가들의 관광 수입이 급감하고 있다. 올해 5월 인도네시아·태국·싱가포르·베트남·필리핀 등 동남아 5개국의 중국인 입국자 수는 2019년 대비 14~3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라질과 호주와 같은 광물 수출국 역시 중국의 인프라 투자 감소와 부동산 침체에 따른 악영향을 받고 있다.
이민경 기자
th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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