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대륙검은지빠귀 아기새, 참매 몰래 서울 도심 둥지 나왔다

한겨레 2023. 7. 19.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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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애니멀피플] 윤순영의 자연관찰 일기
세 차례 탐조 끝에 둥지 벗어나는 새끼 관찰
서울 올림픽공원은 도심지이지만 새들의 훌륭한 삶터가 된다. 텃새화 되고 있는 희귀 나그네새 검은대륙지빠귀도 올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았다. 둥지에서 갓 나온 새끼의 모습.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은 도심 한가운데에서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는 곳이다. 희귀 나그네새인 검은대륙지빠귀도 몇 해 전부터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

올림픽공원은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면적이 약 144.71㏊(43만8000평)으로 여의도 절반에 달한다. 공원은 지난 37년간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되어왔을 뿐 아니라 텃새와 여름철새, 겨울철새가 서식하는 공간으로 우수한 도심 생태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희귀조류 나그네새 대륙검은지빠귀 암컷.
대륙검은지빠귀 수컷.

지난 6월20일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림픽공원에서 대륙검은지빠귀가 번식하고 있는데 지금쯤 이소(새의 새끼가 자라 둥지에서 떠나는 일)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대륙검은지빠귀는 3~5월에 도서 지역에서 매우 드물게 관찰되는 나그네새다. 나그네새가 정착하여 번식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급히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지인이 알려 준 위치와 둥지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마침내 대륙검은지빠귀 둥지를 찾았지만 둥지에 새끼들이 없었다. 이미 이소하여 우거진 나뭇잎 속에서 새끼가 어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산책로 옆 풀밭에서 먹이사냥을 하는 대륙검은지빠귀.
사람들이 오가도 대륙검은지빠귀는 크게 경계하지 않는다.
반려견 산책이 많은 올림픽공원이지만 개를 보고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엔 대륙검은지빠귀의 천적인 길고양이가 많다.

대륙검은지빠귀 어미가 풀밭에서 주식인 지렁이를 찾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데도 크게 경계하지 않고 태연하게 먹잇감을 찾는 데 열중하는 모습이다. 새가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이유는 올림픽공원에서 그동안 여러 해 번식하며 사람들과 익숙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어미는 여기저기 흩어진 새끼를 찾아 먹이를 물어다 줬다. 주변에 대륙검은지빠귀는 여럿 보였지만 새끼는 잘 보이지 않았다. 흐린 날씨와 우거진 숲 그늘 탓에 노출이 부족해 사진 촬영도 쉽지 않았다.

먹이를 기다리는 대륙검은지빠귀 새끼.
다른 개체의 대륙검은지빠귀.

혹시 다른 개체도 번식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올림픽공원을 다시 찾았다. 대륙검은지빠귀가 움직이는 동선을 관찰하니, 주변 느티나무를 자주 오고 가다 근처에 까치가 나타나자 맹렬히 공격했다. 분명히 둥지가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지만 둥지를 찾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한참을 찾던 중, 10여미터가 넘는 느티나무 꼭대기에 둥지 모양이 얼핏 보였다. 여러 그루의 느티나무 가지가 서로 엉켜있어 방향을 바꾸면 보이지 않고, 눈앞에서 잃어버리기 일쑤다. 앞뒤로 움직이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둥지가 눈에 들어오는 위치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느티나무 주변에서 경계하는 대륙검은지빠귀.
까치가 나타나자 대륙검은지빠귀 쏜살같이 공격을 한다.
대륙검은지빠귀가 둥지에서 먹이를 주고 있지만 새끼는 보이지 않는다.

시선의 각도를 조금이라도 바꾸면 다시 찾아야 할 정도로 와이(Y)형 나뭇가지 사이에 비밀스럽게 둥지를 만들었다. 곧 어미가 먹이를 물고 둥지로 날아든다. 새끼가 보이지 않고 어미가 먹이를 주는 모습만 보였다.

온종일 관찰한 결과, 새끼는 부화한 지 2~3일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됐다. 대륙검은지빠귀는 보통 한 번에 4~6개의 알을 낳는데 부화에는 15~16일이 걸린다. 알이 부화한 뒤 13~14일이 지나면 새끼가 둥지 밖으로 나온다.

대륙검은지빠귀 어미가 먹이를 가지고 새끼를 둥지 밖으로 유인하고 있다.
어미의 끈질긴 먹이 유혹을 못참고 둥지 밖으로 나온 대륙검은지빠귀 새끼.

둥지를 발견한 직후 이른 장마가 시작됐다. 관찰하기 어려워지자 대륙검은지빠귀 관찰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다행히 7월1일 날씨가 맑게 개어 올림픽공원을 찾았다. 시간이 꽤 지났기에 새끼가 둥지를 떠났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으나 훌쩍 자란 대륙검은지빠귀 새끼가 아직 둥지 안에 있다. 다행이었다.

마침 어미가 먹잇감을 물고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둥지 안에서 자란 새끼는 바깥세상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어미가 새끼를 달래며 계속해서 유인했다. 드디어 새끼가 용기를 내어 둥지 위로 올라섰다. 다시 한참을 망설이다 둥지 밖 나뭇가지로 올라섰다. 첫발을 내딛기까지 무척이나 오래걸렸다. 잠시 뒤엔 둥지와 나뭇가지를 오가며 자유롭게 들락거린다. 새끼의 두려움은 사라졌다.

둥지에서 갓 나온 새끼는 둥지 안에서의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을 바라본다.
기지개를 켜면서 날개 운동을 한다.
스스로 자리를 이동하는 모습.

어린 새가 둥지를 떠날 시기에 정확히 맞춰온 것 같았다. 새끼는 한 마리뿐이었다. 먼저 둥지를 떠난 새끼가 있는지 살펴본 결과, 처음부터 한 마리만 키워낸 것으로 보였다.

둥지를 나온 새끼는 시간이 갈수록 활발히 움직인다. 날갯짓도 열심히 하고 한정된 공간이지만 나뭇가지를 걸어다니며 위아래로 조심스럽게 옮겨 다닌다. 처음 둥지 밖으로 나왔을 때와는 완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어미가 먹이를 물고 온다.
게걸스럽게 먹이를 받아먹는 대륙검은지빠귀 새끼.
새끼가 대견한 모양이다.
어미가 먹이를 주고 떠나자 더 달라고 보챈다.

어미는 엄청난 무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새끼에게 먹이를 열심히 물어다 준다. 새끼는 먹이를 먹고도 성에 차지 않는지 또 달라고 보챈다. 최선을 다하는 어미새의 모습이 경이롭다.

한 동선으로만 걸어 다니던 새끼가 이날 늦은 오후가 되자 힘없는 날개를 펄럭이며 기웃거리더니 혼신의 힘을 다해 다른 나뭇가지로 날아 옮겨갔다. 첫 날갯짓이었다. 이제는 어미의 보살핌 속에서 조금씩 행동반경을 넓히며 다른 새들과 함께 올림픽공원의 일원이 되어 터를 잡고 살아갈 것이다.

둥지를 갓 나왔을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새끼는 천적을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깃털과 비슷한 색의 나뭇가지를 택해 위장했다.

여름을 맞은 올림픽공원엔 어치, 까치, 물까치, 꾀꼬리 등 각종 조류의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와 요란스럽다. 흰배지빠귀, 호랑지빠귀, 되지빠귀, 붉은배지빠귀가 유난히 관찰된다.

겨울철엔 개똥지빠귀, 노랑지빠귀가 관찰되는 것을 보면 지빠귀류의 먹잇감인 지렁이와 땅강아지가 많은 것 같다. 지빠귀 서식엔 최적지이며 토양도 건강하다는 것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공원엔 여러 종의 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올림픽공원엔 어치, 까치, 물까치, 꾀꼬리 등 각종 조류의 새끼들이 둥지 밖으로 나와 요란스럽다. 사진은 물까치.
어치.
호랑지빠귀.
되지빠귀 암컷.
개똥지빠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올림픽공원엔 유실수가 매우 적다는 것이다. 산수유와 팥배나무, 마가목 등이 심어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공원은 잘 조성돼 있지만, 유실수가 매우 적게 식재돼 있거나 없다는 것이 생태적으로 미흡한 부분이다.

새는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환경 지표종’이다. 한 종의 새가 멸종하면 지구상에 생물 100여종이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들의 작은 배려에 새와 인간이 함께하는 건강한 생태 환경이 조성된다.

대륙검은지빠귀를 비롯해 지빠귀류는 날개를 살짝 벌리고 늘어뜨리는 습성이 있다.

■ 대륙검은지빠귀는 어떤 새?

희귀 나그네새 대륙검은지빠귀는 1999년 7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에서 번식 중인 한 쌍이 관찰된 기록이 있다. 그 후 전국적으로 번식이 확인되며 텃새화가 돼 가고 있다. 먹이가 풍부하고 기후가 번식에 적당하면 새들은 굳이 먼 거리를 이동할 필요가 없다. 달라진 한국의 기후가 대륙검은지빠귀의 생태에 적당해진 것 같다. 원래 영국, 유라시아대륙 서부, 아프리카 북부, 서아시아, 중앙아시아, 인도 북부, 중국 중·남부에서 번식하는데 북반구에서 번식하는 집단은 남쪽으로 이동해 월동한다. 삼림 지대에서 볼 수 있고 빽빽한 덤불이 있는 낙엽수를 선호한다.

몸길이 26~28cm에 꼬리가 길며 무게는 100~125g이다. 수컷은 광택 있는 검은 깃털, 흑갈색 다리, 노란색 눈 테와 부리가 겨울에 다소 어두워진다. 암컷은 어두운 갈색이며 어두운 황갈색 부리, 턱과 및 가슴에 약한 흰 얼룩이 있다. 아주 어린 새는 때 묻은 흰색에 얼룩덜룩한 반점 무늬를 가슴에 가지고 있다.

정지하고 있다가 달음박질하는 대륙검은지빠귀의 사냥법.
먹이를 찾거나 물었을 때는 걷거나, 달음박질을 멈춘다.

수컷은 번식 영역을 방어하며 다른 수컷을 쫓아내고 싸움이 일어나면 침입자는 보통 짧은 시간 내에 쫓겨난다. 잡식성이어서 지렁이, 땅강아지, 곤충, 씨앗 및 열매를 두루 먹는다. 주로 지상에서 먹이를 찾는데 시작→중지→시작을 반복하며 걷고 달리고 뛰며 땅에서 지렁이를 끌어낸다.

올림픽공원에서 참매에게 습격당한 비둘기의 모습.

보통 시력으로 먹이를 발견하지만, 때로는 청각을 통해 발견하기도 한다. 덤불에 앉아 열매를 먹고 애벌레와 기타 활동적인 곤충을 잡아먹으며 낙엽 밑 토양을 들춰 작은 양서류, 도마뱀, 드물게 작은 포유류를 사냥한다. 대륙검은지빠귀의 주요 포식자는 고양이이며, 새로 태어난 새끼는 까마귀, 까치, 참매에 취약하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웹진 ‘물바람숲’ 필자,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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